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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필묵장수 - 황순원

#라디오 책방 l 2020-10-27

라디오 책방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중늙은이 여인은 서노인의 젖은 두루마기를 부뚜막에 말려주었다.

그러다가 여인의 눈이 서노인의 발에 가 머물렀다.

발뒤축이 보이고 발가락이 드러난 양말짝이었다.


중늙은이 여인이 이제 날도 추워질텐데 버선 한 켤레를 지어주겠노라고 했다.

서노인은 너무 황송스러워 얼른 무어라 대꾸도 하지 못했다.


밤 깊기까지 버섯 한 켤레를 다 지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서노인의 손이 절로 떨렸다.

여인이 이렇게 버선을 지어주는 것은 그것이 머언 타향에 가 

생사를 모르는 자기 아들을 위한 선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서노인으로서는 칠십 평생에 처음 맛보는 따뜻한 정의가 아닐 수 없었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여인과 만난 날이 서노인에게는 어쩌면 자기 생애 안에서 가장 소중한 하루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전까지 그는 누구와도 따뜻한 관계 안에 놓이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돌았죠. 하지만 그래서 서노인은 여인의 집을 다시 찾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언제든지 집에 와도 좋다고 관대한 제안을 했지만, 그 호의를 이용해서 자신의 잇속을 차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만큼 서노인은 작은 만남도 귀중히 여기는 다감한 사람이었던 뜻도 됩니다.



틀림없이 늙은 거지 하나가 죽어 넘어져 있었다.


그런데 동장의 눈에 어딘가

이 늙은 거지의 메고 있는 괴나리 봇짐이 낯익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른 사람 아닌 서노인의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을 시켜 괴나리봇짐을 풀어보았다,

돈 얼마큼과 아직 한번도 신지 않은 진솔 버선 한 켤레가 나왔다.

그리고 거기 종잇조각이 있어, 이런 뜻의 글이 적혀 있었다.


여기 들어있는 돈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

그리고 그 때에는 수고스러운 대로 

여기 같이 들어 있는 버선을 신겨 달라는 것이었다.




작가 황순원 (1915.3.26. 평안남도 대동 ~ 2000.9.14.)

:  데뷔-1931. [동광] < 나의 꿈 >  발표.

수상-1983. 대한민국 문학상 

1970. 국민훈장 동백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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