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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웃포커스 - 김혜진

2021-01-26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엄마는 영미씨나 은영씨, 화숙언니, 지선언니가 했던 것처럼

저만치 떨어져 혼자 점심을 먹었고,

상담 전화가 없는 동안 사람들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인사를 하고,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을 하고,

아무도 답하지 않는 질문을 하면서

엄마는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 올랐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주호어머니는 해고통지를 받았습니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작품의 제목이 아웃 포커스 인데요. 아웃 포커스는 사진이나 영화의 촬영 기법 중 하나인데,  일부러 대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것이 흐릿하게 보이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 아웃 포커스가 소외된 현대인의 삶에 비유가 되고 있는 것이죠. 예컨대 엄마는 해고 명단에 오른 뒤부터 회사에서 점차 유령 취급을 당합니다. 나중엔 엄마의 책상 조차도 회사 바깥으로 밀려나 버렸구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죠. 엄마가 사회나 회사의 사람들,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아웃 포커씽 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구절들입니다.



엄마는 종일 회사 정문 앞을 지켰다.

새로운 일에 몸을 단련시키면서.


하나, 둘, 셋 층수를 세고 하나, 둘, 호수를 헤아리며 사무실을 찾은 다음,

종일 그곳을 올려다보는 일이었다.


창들은 모두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겨우 찾았다 싶으면, 사무실은 비슷비슷한 창들 사이로 숨었고, 

엉켰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무도 엄마를 다시 찾지 않았다.

얼굴을 아는 동료들은 회사를 드나들 때마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휴대폰 속에 얼굴을 빠뜨리고 걷는다고 했다.

엄마가 오기 전에 출근하고 엄마가 돌아간 다음 퇴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을 지켰다.




작가 김혜진 (1983. 대구)

           :  데뷔-2012. [동아일보] 신춘문예 <치킨 런> 당선  

              수상-2013. 중앙장편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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