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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말을 찾아서 - 이순원

2021-03-09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내 양아버지인 당숙은 그 때 이미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밑에 아이가 없었다.

결혼한 지 십오 년이 넘는데도 당숙모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애비‘로 불리는 말이 있다면

그건 ’노새 애비‘라는, 차라리 쌍욕보다 못한 호칭뿐이었다.


그 때 당숙은 ’은별‘이라는 노새를 끌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 몸통에 

정수리 한 가운데만 별처럼 흰 털이 난 노새였다.



주인공인 수호가 초등학교 4학년때

어른들은 그를 작은 집 양자로 정했습니다.

어린 수호는 양자 자체 보다 ’노새집 양재‘란 호칭이

더 싫고 부끄러웠습니다.



# 인터뷰. 방민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노새는 나귀 중에서 수놈과 말 중에서 암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우리가 노새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 노새는 자손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당숙 어른이 노새를 부려서 알뜰히 부려서 재산을 모으는데, 하필 이 어린아이가 양자로 가야할 당숙 어른이 아이를 못 갖는다 말이에요. 자식을 못 낳는 노새같은 사람의 양자로 간다는 것이 굉장히 수치스럽게 느껴졌죠.



“나는 양재 안 가” 

“누가 지금 가서 살라나?나중에 작은 집 제사만 맡으면 되지” 

“그래도 안 가”


그러나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될 일이던가.

그 해 가을 덜컥 작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나는 단박 새로 지은 베옷을 입고 불려 나가 어린 상제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말끝마다 ‘양재 안 가’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냥 양자도 싫고 서러웠지만 ‘노새집 양재’는 더더욱 싫고 부끄러웠다.


마을에 우차를 끄는 종기 아버지조차 

노새를 부리는 당숙을 노새, 노새, 하고 부르며

은근히 깔보고 우습게 아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는가.


“나 양재 안 가니까 도로 물러”




작가 이순원 (1958.5.2. 강원도 강릉 출생 )

           :  등단-1988. 문학사상 [낮달] 등단

              수상-2000. 제1회 이효석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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