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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창백한 복도 풍경 - 이채원

2021-03-16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영식은 다발로 묶어놓은 현금 뭉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뭉치가 지난 30년을 보낸 

직장생활의 결과라는 생각으로 잠깐 뿌듯했다.

그러나 그 기분이 잠깐으로 끝나리라는 생각으로

영식은 씁쓸해졌다.

평생 처음 생긴 목돈이 쓰일 곳은 그 곳, 

한 군데뿐인 것이다. 



영식과 미연부부는 지난 30년을

영선의 빚을 갚으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아들 결혼식에 들어온 축의금은

이들 부부가 오랜만에 만져보는 목돈이었습니다.


물론 그 돈도 빚갚는데 쓰여질 걸 뻔히 알지만

미연은 며칠동안 그 축의금 뭉치를 끌어안고

돈 냄새에 취해 지내는 듯했습니다.



“축의금 다 가지고 가서 빚 갚고 왔어” 

“뭐! 왜 말도 없이 갑자기” 

“빚 갚을 거라고 말했잖아.  

축의금 가져다가 그렇게 그 빚 다 갚자니 

나도 생살을 베이는 것처럼 아팠어.

그걸 그렇게 통째로 넘겨 버리다니” 

“예금에도 나누어 넣겠다더니 왜 그랬어.  그걸 다 아깝게...” 

“어차피 당신이 갚아야 할 빚이잖아.

마음 아프지만 우리 그냥 잊어버립시다” 


“곧 그 사람 만나서 빚 다 갚았다는 거 알립시다” 

“그래.  나도 이번엔 그렇게 할 생각이야” 


미연은 빚을 만든 장본인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작가 이채원 (1958. 충청남도 홍성 )

           :  등단-2010. 현대문학 장편소설 [나의 아름다운 마라톤]

              수상-2011. 제1회 한우리 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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