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내용 중 일부 –
영식은 다발로 묶어놓은 현금 뭉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뭉치가 지난 30년을 보낸
직장생활의 결과라는 생각으로 잠깐 뿌듯했다.
그러나 그 기분이 잠깐으로 끝나리라는 생각으로
영식은 씁쓸해졌다.
평생 처음 생긴 목돈이 쓰일 곳은 그 곳,
한 군데뿐인 것이다.
영식과 미연부부는 지난 30년을
영선의 빚을 갚으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아들 결혼식에 들어온 축의금은
이들 부부가 오랜만에 만져보는 목돈이었습니다.
물론 그 돈도 빚갚는데 쓰여질 걸 뻔히 알지만
미연은 며칠동안 그 축의금 뭉치를 끌어안고
돈 냄새에 취해 지내는 듯했습니다.
“축의금 다 가지고 가서 빚 갚고 왔어”
“뭐! 왜 말도 없이 갑자기”
“빚 갚을 거라고 말했잖아.
축의금 가져다가 그렇게 그 빚 다 갚자니
나도 생살을 베이는 것처럼 아팠어.
그걸 그렇게 통째로 넘겨 버리다니”
“예금에도 나누어 넣겠다더니 왜 그랬어. 그걸 다 아깝게...”
“어차피 당신이 갚아야 할 빚이잖아.
마음 아프지만 우리 그냥 잊어버립시다”
“곧 그 사람 만나서 빚 다 갚았다는 거 알립시다”
“그래. 나도 이번엔 그렇게 할 생각이야”
미연은 빚을 만든 장본인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작가 이채원 (1958. 충청남도 홍성 )
: 등단-2010. 현대문학 장편소설 [나의 아름다운 마라톤]
수상-2011. 제1회 한우리 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