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가 이불 밖으로 기어 나온 이수의 맨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에는 집을 나설 때 이수 발등에 자주 입을 맞췄다.
한 손을 발을 감싼 뒤 털 난 발가락을 쓰다듬다
이불 안에 도로 넣어주곤 했다.
도화는 그 발,
자신과 많은 곳을 함께 간 연인의 발을 응시하다
결국 아무것도 안하고 돌아섰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이수는 무엇보다도 도화가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힘들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점점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커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견디기 어려웠다.
더구나 도화는 국가가 인증한 시민,
국가가 보증하는 국민이었다.
반면 이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국민이었다.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어떤 욕망이나 자기 자신이 바라는 것, 자기 자신의 편리함 이런 것을 추구하는 한편 얼마간의 동정과 미련 이런 것들을 갖고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제가 볼 때 이 작중의 도화라는 여성은 그야말로 평범한 여성입니다.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수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그러나 한편에 그 남자 친구에 대한 연민이 있는 점에서 도화는 이 세계에 있을 법한 가장 개연성 있는 여성이다, 라고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잔을 쥔 이수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식당 안으론 시간이 지날수록 꾸역꾸역 사람이 더 모여들었다.
수백 명이 왕왕거리는 어느 횟집에서,
모두가 소리 높여 떠드는 가운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이수와 도화, 둘 뿐이었다.
도화는 어제 저녁 집주인을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간절히 바라오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런데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작가 김애란 (1980.08.15. 인천광역시~)
- 등단 : 2002. 단편 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