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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림자 놀이 - 천선란

2022-04-19

ⓒ Getty Images Bank

2037년 12월 5일

외로움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

나처럼 우주비행사도 좋을 것이다.

고향 행성을 견디지 못하고 추방당하듯 떠났다는 설정을 가져와야겠다.

그렇게 우주를 떠도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겠지.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상처만 가득 안았던 본인의 행성으로.

오직 한 존재만을 바라보기 위해서.

오직 그 존재에게 위로받고 공감받기 위해서. 



- 방송 내용 중 일부 


내가 수술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몫은 직업에 있었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수술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의학계에서는 그렇게 설명했다.

누구나 머릿속에 거울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관찰하고 모사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상대방의 화난 마음, 상처받은 마음, 

그로 인해 내 안에서 피어나는 공감대의 형성,

그 감정이 나를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한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상대의 그림자가 되어서 아픔을 나눠갖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작중에서 이라와 도아는 그걸 초능력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명명이 좀 의미심장하죠. 공감 능력을 초능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공감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작중에서 미래인들은 자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능력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모두가 정말 편하고 행복해졌을까요? 연정과 이라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때로 자신의 지낸 공감능력을 간과하거나 포기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령 고통스럽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려는 그 마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최후의 수단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림자 하는 거야?’

‘네가 아파하는 걸 내가 나눠가지는 거야’ 


나는 절대로 도아가 될 수 없으므로,

그 아픔을 나눠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혹시 몰라서.

도아는 내 그림자가 되어 내 아픔을 조금씩 나눠가졌다.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빌어.


도아가 일어나면 끝내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할 것이고,

끝내 풀지 않은 공식을 풀어낼 것이다.

네 행동을 따라 할 것이고, 네 말을 따라 읊으며

너를 등 뒤에서 끌어안고 괜찮다고 속삭일 것이다.


도아와 함께 있으면 조금씩 가슴께가 아려온다.

근육이 뭉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가장 강력한 감정 하나가, 

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 놓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천선란 (1993.7.7. 인천광역시 ~ ) 

    - 등단 : 2019년 소설 [무너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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