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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주호텔 - 유순희

2022-05-31

ⓒ Getty Images Bank

할머니는 이리저리 땅을 살폈어.

종이를 찾는 거야.

무게가 조금도 나가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종이라도,

할머니의 눈에는 무게가 있어 보였거든.

그래서 점점 더 등을 납작하게 구부리고 땅을 뚫어져라 살피게 되었어.


그럴수록 할머니는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줄어들었지.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까맣게 잊게 되었단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그 날은 메이가 다 쓴 스케치북을 가져왔는데요,

할머니는 그림을 보다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약간 찌그러진 둥그스름한 지구에

아름다운 테를 두른 토성,

몸빛이 황갈색으로 빛나는 울퉁불퉁한 목성,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태양,

그리고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버섯 모양의 우주선까지

찬란하게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늘은 본 게 언제였더라? 별을 본 게 언제였지? 달을 본 건...”


할머니는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하늘은 비가 올 듯 회색빛이었습니다.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할머니는 오랜 삶을 살아오면서 생활에 지친 사람이죠. 폐지를 줍고 그리고 폐지를 줍기 위해서는 땅만 쳐다보고 살았잖아요. 그런데 메이가 그린 그림에 나타난 하늘, 달, 우주 이런 것들을 보면서 하늘을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 동화가 참 좋다고 생각한 정말 좋은 대목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정말 사람들은 생활을 살게 되면 하늘을 잘 못 보게 되는구나. 그런데 우리가 문득 하늘을 볼 때가 있죠. 그러면 우리의 삶은 굉장히 달라 보이게 되죠. 전혀 다른 이 우주적인 시야 속에서 거꾸로 우리의 삶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그런 시각을 얻게 되는 거죠. 그런 장면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 계절이 왔다가 가고, 다시 왔다가 갔단다.

종이 할머니는 여전히 폐지를 모았어.

그렇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야.

눈에 혹이 난 할머니와 같이 주웠어.

그리고 저녁이 되면 따뜻한 밥도 같이 먹고, 생강차도 나누어 마셨지.


종이 할머니는 벽에 붙여 놓은 우주 그림을 보며,

잠깐잠깐 이런 생각에 빠졌단다.


‘여기가 우주 호텔이 아닌가?

 여행을 하다가 잠시 이렇게 쉬어 가는 곳이니...

 여기가 바로 우주의 한 가운데지’




작가 유순희 (1969. 서울 ~ )

    - 등단 : 2006년 장편 동화 [순희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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