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해 겨울에 신촌로터리 목마레코드 앞에서
김현식이 부르는 <사랑했어요>를 들었다.
1989년에서 199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부터
1990년에서 199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까지,
나는 분명 상실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숨만 붙어 있을 뿐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자가
김현식의 노래가 폐수처럼 흐르는
신촌 어느 골목 하숙집에 숨어 하루키를 읽고 있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저는 그저께 한국에서 왔습니다. 당신을 만나려고”
무엇인가 의아스럽다는 하루키의 표정에는,
정말로 나를 보려고 왔단 말이오? 무엇 때문에? 라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고 싶었다.
무슨 할 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하루키에게 책을 내밀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분명히 알아차렸으니,
그게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그것은 하루키라 해도 자신이 내게 던져놓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주인공은 오랫동안 자기 안의 문제를 하루키를 통해서 고민을 하다가 나름의 구원의 길을 찾게 됩니다. 즉 이 작품에서 하루키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것은 하루키에게 답을 구하러 가는 여정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자리잡고 있던 질문을 똑바로 바라보고 또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내면으로의 여행길이었던 것이죠.
주인공이 마지막에 뭘 하냐면 소설을 쓰죠. 즉 이상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이 주인공의 글쓰기행위에 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이 작가의 문학론이기도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팔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대립하는 유전자 쌍이 있다.
하나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도록 한다.
다른 하나는 타인을 생각하며 살도록 한다.
전자는 늘 후자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그것이 유전자인 한 후자 또한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
나도 본성에서부터 이기적인 인간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 또한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작동되는 인간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자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착각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끝내 찾지 못한 하루키의 문장처럼 나는 나 자신을 착각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작가 방민호 (1965.06.10. 충청남도 예산 ~ )
- 등단 : 1994년 <창작과 비평> 제1회 신인 평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