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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술꾼 - 최인호

2022-07-12

ⓒ Getty Images Bank

시장 골목엔 찬 겨울바람이 불고 

신문지가 이리 저리 날아 다녔습니다.

해질녁부터 술집 다섯군데를 들렸고,

최소한 술 일곱 잔은 마셨는데도

아이는 마치 아직 공복인 듯 부족했습니다.


시장 끝, 평양집에 도착한 아이는

유리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있는지 들여다봤습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구레나룻 기른 사내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술만 취하면 그는 늘 웃었다.

제 여편네가 피난통에 총알 맞아 배에 공기구멍이 휑하니 나서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웃었고,

나이 오십 되기 전에 자살하겠다면서도 웃었다.


그 사람과 비교하면 또 한 사내는 아주 달랐다.

걷어올린 팔뚝에 문신이 거뭇거뭇한 사내로,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이프를 던지곤 했다.

전쟁에서 잃은 그의 오른손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주춤주춤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탁자위엔 투명한 막소주가 놓여있었다.

아이는 그 소주의 맛을 알고 있었다.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이 작품은 1970년에 발표된 걸로 이야기가 되죠. 그런데 최인호 작가는 45년생이에요. 작중에 나오는 소년을 맞이하는 술집, 술꾼들의 모습은 6.25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전후의 시대라고 하는 아주 피폐한 그리고 상이용사들이나 가난 또 죽음 이런 것들이 만연한 세계를 그 소년의 눈으로 보면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고 그 강렬한 인상을 소설로 옮긴 것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중에 술집에 아버지를 찾으러 들어갔을 때 세상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모습은 무기력하고 또 가난하고 그리고 또 전쟁에 의해서 스스로 몸이 훼손당하고 또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그런 장면을 이 소설은 보여주죠.



‘아, 아, 이 어두운 밤 아바지는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잠시 비틀거렸다.

허나 술에 취했다고 해서 자기가 빠져나온 철조망 개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잊어버린 그는 아니었다.


그는 잠시 비로드 빛깔로 빛나는 어둠 속에서  

보모에게 들키지 않고 

체온이 아직 남아 있을 침구 속으로

어떻게 무사히 기어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허나 그는 술취한 사람 특유의 자기나름식 안이한 낙관에 자신을 맡겨버렸다.


언덕 아래에서 차가운 먼지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사냥개처럼 그 냄새를 맡으며 이를 악물고,

내일은 틀림없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작가 최인호 (서울 출생 1945.10.17.~2013.09.25.) 

    - 등단 : 1963년 한국일본 신춘문예 <견습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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