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바깥 심부름을 하는
즉, 뜰을 쓸고 학교의 정문이나 사무실의 문을 열고 닫고,
직원들의 요구하는 물품이나 사 오고 일을 시행하는 소사요,
솔직히 말해서 머슴의 사역으로 들어온 김응교는
기숙사가 새로 만들어지자
그의 아내를 기숙생의 식모로 일하게 하여서 안팎으로 벌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기숙생들에게서는 샌님이니 샌님 마님이니의 존칭을 받지만
학교에서는 언제나 응교였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안방에서는 재봉침 소리가 달달달달 굴러나왔다.
“어이구! 허구한 날 저 짓만 하니...”
은애 할머니는 가만히 중얼거리며 양지쪽으로 상자를 놓고
그 앞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상자는 푸르고 노랗고 희고 그리고 또 보라색 따위의 종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딸의 바느질 솜씨 덕을 보려고 들어오는 옷감들은
대개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색색 종이에 싸여져 있었다.
전에는 들어오는 대로가 다 그럭저럭 찢겨지고 구겨지고 그래서 버려지기 마련이었는데 이제는 할머니 손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그것을 모아다 떡장수 하는 조카며느리에게 주면
번번이 담뱃갑이 쥐여지곤 했던 것이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당시에 밥 짓기나 삯바느질 같은 경우에는 여성이 당연히 해야 될 일 또는 가난한 여성들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65년에는 육십대였습니다.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은 자신과 다르게 사회가 부여한 틀이나 규격에서 벗어나서 보다 주체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기를 바랐던 작가의 마음이 이 작품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난 밥 짓다 늙고, 어민 바느질하다 늙었는데,
너도 옷 짓다 늙을테냐?”
“그럼 어때요? 사람이란 일생을 뭘 하면서 늙어가는 게 아녜요?
할머니나 엄마나 다 남을 위해 봉사를 했으니 안한거보다 얼마나 장해요?
저도 그렇죠.
디자인을 연구해서 작은 걸루도 크게, 나쁜 걸루도 좋게,
좋은 걸루는 더욱 훌륭하게 만들면 오죽 좋아요?
참, 할머니! 지가 할머니 나이트 가운 한 벌 지어드릴게, 응?”
“에라 미친 것! 다 늙은 게 양복을 입어? 고게 별소릴 다 하네”
“호호, 양복이 아니라 자리옷 말예요. 그걸 입으심 아주 멋질 거야”
은애는 팔딱팔딱 뛰어서 안방으로 건너갔다.
스물 세 살에 저만치 철이 들면 괜찮겠다 싶어서
샌님 마님은 합죽한 입을 헤벌리며 웃었다.
작가 박화성 (전라남도 목포 출생 1904.04.16 ~1988.01.30)
- 등단 : 1925년 단편 <추석 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