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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톱 - 김은

2022-07-26

ⓒ Getty Images Bank

응급실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 밝은 조명 아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각종 기계와 선을 부착하느라 아무렇게 헤쳐진 할머니의 가슴이었다.

가슴이 훤히 드러난 상태로 의사는 사망 날짜와 시간을 선고했다.

나는 손으로 의사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벗겨진 옷을 추스르고 시트를 정리하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했다.

나는 할머니라면 이런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또 생길지 모르는 범죄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검이 필요하다는 여자 경찰의 말을 삼촌은 듣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깨를 밀치며 병원 밖으로 내쫒았다. 


나는 어떻게든 삼촌을 설득하고 싶었다.

그건 할머니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대로 이 일을 묻어서는 안 된다고 말 하려고 나서는 내 팔을 엄마가 붙잡았다.

이제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들이 절대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 같았다.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삶을 정갈하게 살아온 할머니가 뜻하지 않게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런데 사고는 욕실에서 넘어져서 뇌진탕 혹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신 것인데 공교롭게도 하의가 벗겨진 채고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어떤 성적인 범죄의 결과로써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손녀인 여성 주인공이 할머니를 찾아오던 성호라는 그 아저씨가 범죄 행각을 벌였을 가능성의 단서를 알고 있단 말이죠. 그러니 이것을 사건화해서 드러내야 될지 아니면 범죄의 단서를 모른 척하고 묻어두고 장례를 치러야 될지, 그러니까 이 여성 주인공이 학원에서 겪는 일과 이 할머니의 죽음이 사실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래서 오버랩 될 수 있는 효과로서 작가는 소설을 구성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나는 아직 조문객 하나 없는 빈소를 빠져나왔다.

어쩐지 이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쉬지 않고 차를 몰면 원장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학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원장이 나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그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더 이상은 결코 함부로이고 싶지 않았다.




작가 김은 (전라남도 담양 1966.10.05 ~ ) 

- 등단 :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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