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발이 부르틀까봐 흰 버선을 신었는데
학교에 가는 좁은 길에서 나는 가끔 그녀보다 뒤져가며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의 오목한 선과 배 모양으로 된 꽃신을 바라보았다.
그 선은 언제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가 온 다음 날 물이 괸 길에서
나는 그녀를 업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청개구리처럼 등에 꼭 매달렸는데
나는 내 허리 양 켠에서 흔들리는 꽃신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 방송 내용 중 일부
나는 내 결혼의 방해가 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두 집 담 사이에 자란 표주박은 싸움 없이 나누었고,
아버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예부터 신집에 쇠가죽을 팔았다.
요즘에 와선 다음 달에 돈을 갚을 테니 쇠가죽 한 감을 팔라 했다.
우리는 지불할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두 켤레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쇠가죽을 가져가게 했다.
이제 내가 청혼했으니 내일 큰 쇠가죽을 가지고 가서
그의 딸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꽃신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리라.
혼인날이면 가마 타는 대신 이웃집끼리니
우리 가족은 집에서 싼 하얀 베를 깔아 꽃신이 그 위를 밟게 할 것이다.
“내 딸을 백정네 집 자식에겐 안 줘!
내 딸은 일곱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꽃신장이 딸이야.
쇠고기 덤이나 좀 있을까 해서 혀끝으로 좋은 말을 했더니, 이 백정 녀석이 마음을 크게 했나보네. 나는 혼인식 때 신는 꽃신장이야”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신집의 남자는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에요. 하층 특수 신분의 사람이죠. 과거에 신발 만드는 사람은 신분이 매우 낮고 사회적으로 차별당하는 사람이고, 주인공은 백정의 자식인 것인데 신분이 낮죠.
둘 다 신분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 신을 삼는 이 사나이는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이것이 사회가 변모하고 꽃신의 가치가 더없이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자기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려는 형상자체가 이 소설 속에서 아주 분위기를 품격 있게 만들어준다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꽃신은 한 켤레 두 켤레 없어졌다.
나는 오고 또 오곤 했다.
노인의 물건이 차츰 줄어들자 그에 대한 날카로운 내 감정은 식어 갔다.
그 대신 슬픔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때때로 나는 노인이 나를 알아보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는 부인과 딸에 관한 말을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꽃신이 다른 사람에게 다 팔려 가기 전 한 켤레 가지고 싶었지만
꽃신 아닌 슬픔을 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꽃신이 세 켤레 남았을 때 나는 그것에 차마 가지 못했다.
예쁘게 꾸며진 꽃신의 코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훌쩍 뒤돌아설 것 같아 더 이상 찾아가지 못했다.
작가 김용익 (경상남도 통영, 1920.05.15.~1995.04.11)
- 등단 : 1956년 단편 소설 [꽃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