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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피서본능-이승은

2022-12-06

ⓒ Getty Images Bank

다영이 말대로 여자의 얼굴은 움직이고 있었다.

늘어진 한쪽 눈꺼풀이 움찔했고 주름진 입가의 얇은 피부가 떨리고 있었다.

입가의 미세한 떨림이 잦아들더니 얇고 가느다란 관으로 바람이 빠져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여자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지희는 몸을 움츠렸다.

지희의 팔등에 맞닿은 여자의 코와 입에서는 희미한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커브 길에서 차의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며 여자가 푹 쓰러졌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여보...할머니가...” 


“어머니가 왜요” 


남자를 보며 지희는 후회했다.

안전벨트를 풀지 말았어야 했다.

등을 쓸어내려주려고 지희가 여자의 안전벨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후의 일이 벌어졌다.


“숨을 안 쉬는 것 같아요” 


“코를 골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오른쪽이 아니라 지희의 턱 바로 아래에서 들려왔다.

비염이 심한 이 작은 아이는 코를 골았다.

지희의 팔등에 맞닿은 여자의 코와 입에서는 희미한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차를 세워야 해요”



# 인터뷰. 방민호

사람들이 2년, 3년씩이나 폐쇄된 삶을 살다보면 인간의 본성과 폐쇄된 삶과의 충돌이 일어나죠. 그때는 본성을 쫓게 되죠. 작품 제목이 피서본능인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아들과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피서 철을 맞이해서 어딘가로 가고 싶은 가족, 두 가족이 서로 맞물리게 해서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조건들을 여러 개 제시해 놓고 그 안에서 인간들이 부조리한 조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건 전개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바로 코로나 시대에 억압된 인간의 본성 같은 것이 감춰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호는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폈다.

고개가 푹 꺾인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경호는 심한 갈증을 느끼며 액셀을 밟았다.

남자는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른 후 다시 안경과 마스크를 썼다.

검은 SUV는 폭우를 뚫고 달렸다.


왼편으로 산을 끼고 달리던 차는 마지막 커브를 지나며 덜컹거렸다.


아스팔트 도로의 움푹 팬 웅덩이에서 솟아오른 물보라가

보닛과 앞 유리를 뒤덮을 때 지희는 두 눈을 감았다.




작가 이승은(서울, 1980~)

    - 등단 : 2014년 단편소설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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