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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 남자의 방 - 김이정

2023-01-31

ⓒ Getty Images Bank

하오 다섯 시 이십 분, 그의 방에 어김없이 불이 켜진다.

푸른 빛이 짙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그의 방은 순식간에 화려한 살롱처럼 변한다.

불빛 환한 그 방을 나는 오늘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방은 내 방과 다를 바 없는 열다섯 평짜리 복층형 원룸 오피스텔이다.

남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방은 어디선가 쓰던 것인 듯 

커튼 자락이 창턱에서 50~60센티 정도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보통 길이의 커튼을 창문이 높은 복층의 오피스텔에 매달아놓으니

얻어 입은 치마처럼 달랑하다.

그 덕에 내 방에서는 책상에 앉아 있는

그의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꼭 그 만큼의 높이까지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입고 있던 옷이라도 터진 건지 

그가 내복 빛깔의 옷을 입고 바느질을 하는 모양이다.

한 땀 한 땀 떠가는 손길이 더 없이 신중하고도 정성스럽다.

그의 시선과 바느질감이 한 몸이라도 이루듯 빈틈없이 몰두해 있다.


나는 그의 바느질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어느 덧 그에게 바느질은 책상 앞에 앉아 종일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던 모습이나

홀로 술을 마시던 모습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는 늘 홀로 있지만 정부와 틈 하나 없이 포개져 있는 사내처럼 충만해 보인다.

고독하지만 외로워 보이진 앉는다.



# 인터뷰. 전소영

이 작품의 특징은 “그”라는 삼인칭 대명사를 통해서 마치 타인처럼 그려지던 대상이 결국 주인공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반전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는데요. 그 반전이 우리 일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굉장히 긴밀한 관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타인이죠. 그래서 작중에서 아버지가 떠난 이후에 가족들이 아버지가 그럴리가 없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데. 말하자면 아버지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족들도 몰랐다는 뜻이 됩니다. 때문에 주인공도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죠. 작중 아버지의 모습은 사회나 가족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나는 캄캄한 어둠에 묻혀버린 그의 방을 향해 술잔을 든다.


오늘이 네 아버지 생일인거 너도 알지? 


엄마는 끝내 참았던 한 마디를 내뱉고야 한다.


꼭 십 년인데...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마침내 엄마의 목소리가 포도주잔 깊숙이 젖어든다.

나는 불 꺼진 그의 방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 김이정 (경상북도 안동, 1960년~ )

    - 등단 : 1994년 단편소설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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