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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서투른 도적-현진건

2023-02-07

ⓒ Getty Images Bank

두 방에 불 때기가 어려워서 

장지로 막은 안방에 우리는 아랫간에 자고

그는 윗간에 자니 한 방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의 한숨과 호소는 장지 하나를 두고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그는 좀처럼 잠도 자지 않았다.

내가 깨어 있는 듯한 눈치만 보이면

자기의 설움과 슬픔을 늘어놓는다.


“이 거룩한 댁에서 저를 안 살려주면 누가 살립니까?”


내가 꼭 그를 구해야만 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추근추근하게 굳세게 줄기차게, 조르고 볶고 호소하고 애원한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이따금 뜬눈으로 새기까지 되었다.


잠꼬대처럼 호소를 중얼거리다가도 그는

흔히 고단한 꿈을 맺는 모양이나 이 꿈이 도모지 길지 않았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할멈이 일어나 나간 뒤로 아내가 나가 보니

마룻바닥에 쌀낱이 흩어져 있었다.

밥쌀을 내다가 떨어뜨린 것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로부터 뜰로, 

뜰로부터 우물 가는 길로, 

쌀이 줄을 그은 것처럼 흘러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멈 뒤를 쫒아가 보니까

그의 걷는 대로 쌀이 줄줄 흘러내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 전대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 인터뷰. 전소영

이 작품이 쓰인 1931년은 세계 대공황의 여파가 일제에도 미쳤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일제가 자국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던 시대가 1930년대 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 이후에 조선은 정치적으로 더 억압되었고 또 경제적으로 전대보다 훨씬 가난해졌습니다. 할멈은 1930년대 조선의 경제적인 궁핍을 아주 실감나게 드러내는 인물인데요. 특히 당시에 하층민의 삶이 얼마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당대 조선이 전반적으로 어려웠지만 할멈이 속해 있는 하층민의 고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어요. 할멈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잠까지도 포기하고 밤낮으로 주인공에게 애원을 하잖아요. 그것은 식구들이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도 버티기 힘들다는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하층민은 사회에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고통만 계속 당해야 했습니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무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사탕이라도 사 줄 수 있는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얼떨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향해서,

심장을 향해 이 동전 서 푼을 후려갈긴 것이다.




작가 현진건 (대구광역시, 1900.8.9.~1943.4.25)

    - 등단 : 1920년 단편소설 [희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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