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와준 그를 보자 나는 다시 울음이 복받쳤다.
왜 그렇게 눈물이 잘 나는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했다.
수의사의 처치를 받는 동안 강아지는 더욱 애처로운 소리를 냈고
나는 숫제 그의 품에 안겨서 귀를 막고 흐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짓거리였지만
나는 그 감미로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수의사는 강아지 목구멍에서 집어낸 생선가시를 보여주면서
개 아픈 데 같이 우는 아이는 많이 봤어도
같이 우는 할머니는 처음 봤다고 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그 시절 내 눈을 가리고 오로지 한 남자만 보이게 한 그 맹목의 힘을
딸은 정열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정열이라 해도 좋고 정욕이라 해도 좋았다.
지금 조 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 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한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수가 없었다.
# 인터뷰. 전소영
주인공은 이별을 택합니다. 감정 외에 육체적인 교감도 충족이 돼야 진짜 사랑이라고 여기는 자기 가치관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또 자신의 사랑을 타산적으로 생각하는 딸이나 조 박사 며느리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두 가지 이유로 이별을 택하는데요. 즉, 사랑을 더 이상 훼손하고 싶지 않았고 주체적인 삶을 택했기 때문에 이별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원서 작가는 노년 문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본인이 노년기에 이를 때까지 왕성한 창작을 이어가면서 자신이 속한 세대의 인물을 적극적으로 창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마른 꽃>은 작가가 예순 다섯 살에 이르러 써낸 작품입니다. 그런 만큼 노년기에만 가질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시선, 감수성, 지혜,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곧 미국 갈 수속중인데
될 수 있으면 오래 머물 거란 얘기를 하고 나서,
그의 반지 낀 손 위에다가 내 손을 정성스럽게 포개면서
한 번 과부 된 것도 억울한데
두 번 과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완곡하게 말한다는 게 심하게 들리지는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작가 박완서 (경기도, 1931.10.20.~2011.01.22.)
- 등단 : 1970년 장편소설 [나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