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7일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 연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할 것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
헌재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형법상 낙태죄가 임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 이유를 밝혔다.
형법 개정안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낙태의 허용 요건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따르면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요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기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다.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15주∼24주 이내에는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낙태 허용 사유에 더해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조건부’로 낙태를 할 수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부나 배우자에게 유전적,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근친 간 임신, 임부의 건강 위험 등의 경우에 대해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한다.
또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할 경우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상담과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다만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었던 모자보건법상의 배우자 동의 요건은 삭제했다.
낙태의 방법
형법 개정안은 시술자를 의사로 한정하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방법으로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안전한 낙태를 위해 절차적 허용 요건도 설정했다.
한편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낙태 방법에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약물도 추가로 허용키로 했다. 현행법에는 수술 방법만 규정돼 있다. 또 의사로부터 사전에 시술 방법과 후유증, 시술 전·후 준수사항 등을 충분히 설명 듣고 본인이 서면 동의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이 외에 보건소와 비영리법인 등에 임신·출산 종합상담 기관을 설치해 임신 유지 여부에 관한 심리적 상담도 제공키로 했다.
논란
이같은 개정안에 대해 여성계는 “여성을 처벌하고 여성의 결정이나 목소리를 무시하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퇴행적 행태”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4주라는 기간 제한도 기준이 정확치도 않고, “곤궁하거나 정보가 취약한 여성들에게는 임신 중지의 시기를 지연해 오히려 건강권을 해친다”는 것이다.
여성계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권리이며, 따라서 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단체연합은 정부의 입법 예고안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단체 행동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형법상 낙태죄는, 광범위하게 낙태가 시행되고 있으며, 일부 적발되는 경우에만 형사 처벌을 받는 등의 현실을 감안하면 실효성이 없고, 오히려 범죄자만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음성적인 시술로 여성 건강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향후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정부 입법안을 신속히 국회에 제출, 연내에 법 개정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지만, 여성계의 반발로 그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