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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진

2022-01-26

뉴스

ⓒYONHAP News

일본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 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추천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나와 주목된다.

일본은 강제노역 사실은 제외한 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도광산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섬 사도킨잔(佐渡金山)을 말한다.

여기서 1601년 금광이 발견돼 전성기 때는 매년 금 440kg, 은 40톤 정도를 채굴했다. 이에 따라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에도 시대 최고 권부인 막부 직영으로 개발돼 중요한 재정원 역할을 했다.

1896년 민간에 불하했으나 채산성이 악화돼 금 채굴은 중지됐고,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구리,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활용됐다. 인력을 강제 동원해 노역을 시킨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현재 사도킨잔은 일본의 사적으로 지정된 관광지가 돼 있다. 총길이 약 400㎞에 이르는 갱도 중 300m 정도에 채굴 풍경을 재현하는 인물상 등을 배치해 관광코스로 공개하고 있으며 인근 마을에서는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사적을 볼 수 있다.

    

세계 유산 등재 추진의 문제점

일본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그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로 한정했다. 즉 17세기 초부터 독자적인 기술로 품질 좋은 금을 생산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불리한 점은 빼고, 좋은 점만 나열하는 것은 역사 기록에서 가장 피해야 할 폐단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다. 따라서 이 모두를 역사에 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 후쿠오카대의 히로세 데이조 명예교수는 지난해 강제동원 관련 온라인 강연에서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수가 2천3백 명대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1940년 2월부터 1942년 3월까지 강제노역에 투입된 조선인 수는 1천519명이었다. 1942년 4월부터 1944년 3월까지 2년간 기록이 누락돼 있으므로, 평균 근무기간과 신규 노동자 유입 추세 등을 대입해 계산하면 총 2천379명이란 수치가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43년 5월 현재 사도광산에는 일본인 709명, 조선인 584명이 일하고 있어 조선인 비중은 45.2%였다. 조선인은 운반 착암 등 갱도 내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는 비율이 높았고, 차별이 원인이 된 노동쟁의가 발생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류 검토?

일본은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 바 있다. 즉 대상 기간을 1910년까지로 설정해 강제노역 사실을 피해가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권고했고, 일본은 이 권고를 수용함했지만, 등재 후 약속을 충실히 지키지 않았다.

이번에도 똑같은 시도가 되풀이되고,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짐에 따라 일본 정부가 올해 등재 추진을 보류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0일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이번에는 심사 통과가 어렵다는 일본 정부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란 관측이다. 한번 심사에서 탈락한 유산 후보가 후에 등재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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