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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7일 방한해 2박 3일의 일정을 보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8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을 시작으로 조세영 외교부 1차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만났고 9일에는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를 본격 협의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7개월 만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의 주요 인사가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남북관계 경색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 대선 전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다보니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입니다.

<이종훈. 남> 최근의 남북한 경색 국면과 관련이 깊다 이렇게 봐야겠죠. 아시다시피 북한이 남북한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도 하고 우리를 굉장히 압박하는 전술을 펼치고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빨리 타개하고 싶은 게 문재인 대통령의 심정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샤를 미셸 유럽연합 상임의장하고 회담할 때 미국 대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 추진 필요성을 언급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 상태에서 우리 정부로서도 이걸 어찌됐건 빨리 성사를 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마 이 시기에 방문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건 부장관이 방한하면 어떤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습니다. 일각에서는 판문점에서 북한과 접촉할 가능성도 제기했는데요.

하지만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 일정 중 북한과 접촉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는 이번 방문이 동맹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나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나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특정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날 선 어투였는데요.

<이종훈. 남> 비건 부장관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일단은 한국, 일본쪽하고의 대화가 우선이지 북측하고의 관계 개선이나 그런 걸 위해서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 이런 뜻으로 읽히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최선희 외무성 1부상이 담화를 내놓은 상태에서 방한을 하는데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이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뭔가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고요, 그와 관련해서 원칙론적인 얘기를 한거다. 그리고 비건 부장관 같은 경우에는 이미 지난해 말에도 방한했을 때 북측에 대해서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이야기를 했던 바가 있는데 그때 사실상 거절 당했던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도 작용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북측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비건 부장관이 먼저 나서서 마치 매달린 듯이 그렇게 하진 않겠다. 이런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봐야겠습니다.

이종훈 평론가가 언급한대로 북한은 비건 부장관이 방한한 당일, 북미정상회담 의지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담화를 통해 "다시 한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측을 겨냥해서도 '오지랖 부린다'며 중재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지난 4일, 비건 부장관의 북측 카운터파트 격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며 협상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인데요.

왜 북측은 비건의 방한에 맞춰 이같은 입장을 밝힌 걸까요. 

<이종훈. 남>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 봅니다. 우선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런 판단을 전제로 해서 이럴 바에는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차기 미국 대통령 하고 협상을 해서 타결을 짓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이런 판단을 내린 결과, 더 이상 트럼프 대통령 쪽 하고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 그 가능성이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역시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겠죠. 늘 그래 오지 않았습니까? 북한 같은 경우에는 일종의 벼랑끝 전술을 계속 써서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려고 하는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이번 같은 경우에는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 빈손으로 돌아간 그런 경험도 있단 말이에요. 그런 상태에서 더 확실한 것을 뭔가 손에 쥐지 않는 한, 다시는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는 것을 내비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26주기를 기념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 4월 15일 김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나서지 않아 건강이상설에 휩싸인 적이 있었죠. 태양절은 북한이 최대 명절로 선전하는 날로,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참배에 나서지 않은 건 올해가 처음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비건 부장관 방한 기간 중 참배한 것과 관련해 김 위원장의 북미, 대미 메시지를 기대하기도 했는데요, 이와 관련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종훈. 남> 제가 보기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밑에 김여정 부부장을 비롯한 실무라인 하고 역할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만약에 행동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친서를 보낸다든지 그런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공식적으로 최선희 부상이라든가 이런 사람이 나서서,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메시지를 내비치지 것과 연관 지어서 김 위원장은 이른바 굿캅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내용의 친서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해요. 마침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게 되면 다시 한 번 김 위원장하고 정상회담 할 거냐는 질문에 도움이 된다면 할거다, 이런 내용도 있고,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얘기도 하고 있거든요. 그런 걸로 봐서는 어쩌면 비건 부장관 방안을 계기로 해서 특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친서를 주고받을 가능성은 없잖아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건 부장관은 방한 기간 동안 북한과의 접촉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국과 함께 북한과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 이후의 약식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남북 협력을 지지하며, 북한과 대화 재개시 균형 있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할 준비가 됐고 권한이 있는 상대역을 임명하면 우리가 그 순간 대화할 준비가 됐음을 확인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한국과 매우 긴밀히 협력하고 올해에 진전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종훈. 남> 이번 계기가 아니더라도 북측 하고는 언제든지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 놓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북측이 미국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최근에 보이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 자체를 과연 실제로 단절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할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오고 있고요. 실제로 아예 트럼프 대통령하고 정상회담을 안 하는 쪽으로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반면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이런 메시지를 내보낸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북측도 겉으로 얘기하는 것과 내면의 판단은 좀 다를 수도 있다, 속으로는 은근히 북미 정상회담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다시 한 번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빈손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우리가 절대로 회담에 응할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미국이 북한을 견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핵화 협상안, 즉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지 않는 한 북미정상회담이든, 비핵화 실무협상이든 재개되기 힘들 것이라는게 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비건 부장관의 방한만으로 북미대화를 당장 견인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비건 부장관의 방한 목적은 북미관계보다 새롭게 꾸려진 외교안보라인 인사들과의 상견례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비건 부장관 역시 "이번 방한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와 동맹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는데요.

지난 3일 교체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진용이 한반도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시동을 걸고 있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정의용·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 등은 북한과의 대화를 복원하는 첫 임무를 자임하고 있습니다.

<이종훈. 남> 이번 외교안보 라인은 특징이, 북한의 굉장히 초점이 맞춰졌다, 이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남북한 관계 개선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 같고요. 특히 그 중에서도 북한과 대화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 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북측에서 보기에 대화 상대로 여길 만한 그런 사람들은 가능하면 다 포함시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 지나치게 북한 편중이 아니냐, 그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요. 미국하고의 동맹관계를 기조로 깔고 지금 나가야 되는 그런 상황에서  향후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북한에 끌려가는 듯한 그런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도 없잖아 있어서 그 부분은 조금 우려가 되는 바입니다. 근데 기대가 되는 점이라고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에 남북한 관계에 뭔가 극적인 전환, 극적인 계기, 이런 걸 고려하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볼 때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굉장히 창조적인 그런 해법이 나올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아무리 창조적인 접근법을 구상해둬도, 북한이 반응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대화는 없다'고 못을 박았고, 북미 간 '중재 의사'를 밝힌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서도 "섣부르다"고 비난했는데요.

하지만 북한의 입장을 두고 액면 그대로 '대화 거부'라는 해석과 '협상력 높이기 전략'이라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만큼 비건 부장관 방한 이후 북한의 입장을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