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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한의 심청전

# 클로즈업 북한 l 2021-07-15

목요진단 한반도

ⓒ Getty Images Bank

우리나라에서 심청전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몰락한 양반인 심학규는 앞을 보지 못하고 아내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딸 청이를 젖동냥을 해서 키운다. 청이는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남달라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상인들의 인신공양 제물이 되어 바다에 몸을 던진다. 

용왕은 그 효성에 감동해 청이를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고, 그로 인해 왕후가 된 청이가 맹인잔치를 열어서 마침내 아버지다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이전에 공통으로 향유해온 이 고전소설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오늘은 통일연구원 이지순 박사와 함께 북한의 심청전을 만나본다.


북한의 심청전은 청이부녀의 고생담을 어떻게 접근했나?

청이의 어머니 곽씨부인은 청이를 낳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눈도 안 보이는 몸으로 어린 딸을 혼자 돌봐야 하는 심학규의 탄식과 고난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그런데 북한의 심청전은 이 부분이 축소되고 또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고전소설에서는 고생담 자체가 비극적으로 그려지기 보다는 좀더 집단주의적인 특성이 나오게끔 바뀌었다고 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심봉사가 아내가 죽은 다음에 딸을 젖동냥을 받아서 젖을 먹여서 키워야 되는데 이때 원래 판소리에서는 굉장히 구슬프게 나와요. 너무 처절하고 고생스럽게 나오지만 북한판 혹은 북한이 정리한 소설에서는 그것보다는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 그리고 그런 부녀를 가엽게 여기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힘을 합쳐서 공동육아하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죠. 이런 모습은 북한식 이념으로 보자면 사회주의 대가정의 중세식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민 대중들이 모두가 힘을 합쳐 가난한 민중의 한 아이를 혹은 엄마를 잃은 한 아이를 함께 키우는 그래서 집단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그런 모습처럼 보이게 합니다. 

창극의 경우에는 심청이가 물을 기르면서 노래하면서 아버지를 봉양하는 이야기를 아주 활기차게 그리고 있는데 심청이가 가지고 있는 원래 낙관적인 성격, 이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으로 만들어졌고요. 그래서 가극이나 소설에서는 심청의 고생담이 원래 판소리에서 보여줬던 비극적인 요소보다는 좀 더 화기애애하게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아이를 키우고 심청이는 사람들과 함께 사회 좋게 지내면서 밝고 활기차게 아버지를 봉양하는 그런 모습으로 좀 다르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심청이와 장승상 부인의 관계를 계급적으로 해석

북한에서는 고전소설에도 계급적 관점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심청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아버지 심학규는 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다. 지나가던 스님이 심학규를 구해주면서 부처님께 공양미 300석을 바치고 정성껏 기도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청이가 상인들에게 300석을 받기로 하고, 인신공양의 제물이 되기로 결심한다. 

평소 청이를 딸처럼 아끼는 장승상부인이 300석을 대신 내주겠다고 만류하지만 청이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공양공양의 제물이 되어 바다에 몸을 던진다. 

북한의 심청전은 이 부분을 계급적으로 해석한다. 


“장승상부인과 심청이의 관계는 예를 들면 심청이는 이 얘기에서 한마디로 민중, 인민의 계급으로 그려진다면, 승상이라는 양반계급에 속하는 부인이 심청이에게 동정심을 보이잖아요 이 동정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는 어떤 식으로 비판하냐면 양반계급의 한 부인이 가지고 있는 동정심을 ‘미화분식’했다. 즉 한마디로 너무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다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장승상부인이 공양미 300석에 팔려 간다든가 대신 내주겠다고 하지만 이것을 심청이가 거절하는 부분도 해석하는 관점에서 북한의 입장은 아버지를 버릴 수 없다 라는 그 심청의 마음하고 뱃사람들과의 어떤 약속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 자체를 의리로 해석합니다. 양심과 의리,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인민의 고상한 도덕적 양심, 이것을 표현하는 거죠. 이것은 단지 심창이를 어떤 <효>라는 마음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도덕과 양심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마 남한과는 좀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적 관점으로 북한이 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심학규를 인민으로 윤색한 이유

어머니 된 마음으로 심청을 가엽게 여긴 장승상부인의 마음도 ‘북한의 심청전’에서는 양반의 틀로 해석된 것이다. 그래서 심학규의 신분도 양반출신임을 부정하고 인민으로 윤색했다. 

북한에서 널리 읽히는 림호권의 판본도 원작과 달리 심학규의 신분을 양반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북한의 심청전에서 청이 부녀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봉건시기가 갖는 시대적 제약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윤색하는 과정에서 심학규가 양반이라는 것이 빠져요. 왜냐하면 북한의 어떤 관점에서는 양반과 민중 혹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서로 계급적으로 갈등하고 있는데 선량한 양반이 나와서 뭔가 승리하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심봉사 부녀의 신분을 양반에서 뺐죠. 이 소설자체가 가지고 있는 북한의 해석은 심봉사 부녀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중세 봉건시기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제약 때문이다, 이것이 북한의 관점이기 때문이고요. 그래서 심청이가 온전하게 어떤 효의 아이콘이 되고 혹은 전형적인 인물이 되고 민중들이 따라야 될 민족 문화의 전통적인 주인공이 되려면 양반이라는 계급적 성분보다는 그냥 인민의 대표자, 효의 대표자 이걸 이야기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반대에 속하는 장승상 부인은 부정해야하는 이런 식의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죠.”


북한에서 심청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심청의 선량한 도덕적 품성과 숭고한 희생 정신은 심청이 인민이었을 때 더욱 가치를 드러난다. 그래서 심청이 끝내 왕후가 되는 감동적인 서사를 통해 인민이 갖는 선함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즉, <심청전>을 통해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의 승리를 이야기하고 그 승리를 이끄는 주인공이 인민인 심청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심청전에서는 심청의 고난과 그 고난을 극복하는 서사가 작품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다. 


“이야기의 원본을 개작하는 정도는 남한에서도 어린이용으로 고전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보여지 듯이 북한에서도 그 정도는 하지만 특히 북한의 경우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보여주는 그 부분에서 아주 미세하게 조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한에 전승되는 원본에 가까운 판본에 보면 심청이를 아름답게 묘사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름다운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죠. 평소에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는가 혹은 노동자의 어떤 심성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이런 측면이 있죠. 그래서 북한의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의 모습은 한마디로 부지런히 일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노동자의 형상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눈먼 아버지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는 심청의 경우에는 혈연적인 관계에서 가지고 있지만 사랑과 효성 자체가 어떤 도덕과 의리와 양심적 관계로서 인민들이 따라 배워야 될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대표적인 주인공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토리 전개 자체에서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지만 사회주의적 내용에 민족적 형식이라는 틀 안에서 재해석이 되는 과정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문학은 한 시대의 사상과 규범을 그대로 반영하는 콘텐츠다. <심청전>도 북한의 당의 정책과 의도에 맞게 각색 혹은 윤색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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