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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한의 춤

#한반도 리포트 l 2022-05-18

한반도 리포트

ⓒ YONHAP News

고대 중국인들은 삼국지나 후한서 등의 역사서에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등 제천의식을 소개하면서 우리를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고 기록했다. ‘10여 명의 남녀가 대열을 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는’ 무용총을 비롯해서 우리 고대 고분벽화에도 춤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춤과 노래를 즐겨왔고, 그 전통이 오늘날 한류 문화로 이어졌다. 

북한의 춤 문화는 어떻게 발달해왔을까? 

김채원 춤 문화 비교연구소 소장과 함께 북한의 춤을 살펴본다.

         

형태를 중요시 하는 북한의 춤 

남북의 춤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분단과 함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북한의 춤은 특히 형태를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각 동작의 고도로 기교화 된 테크닉, 빠른 동작이나 짧게 끊어주는 스타카토식의 끝맺음이 특징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치가 뚫고 들어가기 힘든 곳도 문화예술은 뚫고 들어갈 수 있으며, 총포가 쟁취할 수 없는 것도 문화예술은 쟁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북한 예술의 기능과 역할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무용도 이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북한의 <문학예술사전>도 무용을 ‘사람들의 률동적인 움직임을 기본 수단으로 하여 사회 현실과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형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을 대표하는 무용가 최승희 

민속무용 기법에 외래무용 기법을 결합해서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 북한의 춤 체계를 확립하는데 무용가 최승희의 공헌을 빼 놓을 수 없다.

쟁강춤은 최승희의 무당춤을 재해석한 북한의 대표적인 춤으로 무용수들의 쇠팔찌에서 쟁강쟁강 소리가 난다고 쟁강춤으로 불린다. 사후 1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까지도 최승희의 춤은 후대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최승희는 1911년 출생으로 일본의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공부했다. 조선의 고전을 현대화한 ‘에헤야 노아라’ ‘승무’ ‘무녀춤’ 등을 창작했다. 그리고 외국 순회공연을 통해 세계적인 무용가로 성장했다.

1946년 김일성의 권유로 월북한 최승희는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조선민족무용기본>을 출간하는 등 북한 춤의 토대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1967년 숙청돼 1969년에 사망했고, 이후 다시 복권돼 애국열사릉에 안치됐다고 알려진다. 


정치색이 담긴 춤.. 혁명 무용으로 완성돼

북한 춤의 발전 과정은 북한의 국가정책과 당의 주요 방침 변화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는 평가다. 한국전쟁 때는 전투성과 선동성을 강조하는 예술작품 창작과 기동성을 발휘하는 공연체계를 통해 군인들과 주민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전쟁 후엔 인민을 공산주의화 하는 목적으로 무용작품이 만들어졌다. 

1954년에는 전쟁 중 파괴된 모란봉 극장을 재개관하고, 1960년엔 평양대극장을 준공하는 등 공연을 위한 시스템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용공연도 정치적 성향을 명확하게 드러내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혁명무용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4대 명작무용’이 완성된다.

특히 <키 춤>은 항일유격대에 식량을 보내기 위해 물방앗간에서 곡식을 키로 손질하는 처녀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으로 북한의  ‘4대 명작 무용’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힌다.

키 춤은 혁명가극 <피바다>중에서 방앗갓 가무의 일부를 군무로 분리시킨 작품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키 춤의 배경이 된 <피바다>는 1970년대 북한 문화예술의 일대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피바다>는 일제강점기 을남 어머니 순녀가 일제에 의해 겪는 고통을 통해 혁명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197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로 가극화됐다. 

이렇게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혁명가극이 만들어졌고, 이후의 공연예술은 <피바다>식의 창작방식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혁명가극 <피바다>의 등장으로 북한의 춤도 공연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하는 등 변화를 맞게 됩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달리진 북한의 문화 예술

1990년대는 북한이 민속무용에 집중하던 시기다. 민족적 색채를 띤 공연단체를 내세우고, 각 지방의 향토색 짙은 민속춤을 찾아내 그 특성을 살린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북한의 문화예술도 상당한 변화를 맞는다. 북한은 2012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일종의 사회·문화 비전인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제시하고, 문학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 문명국을 따라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 후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상교양의 수단이란 점은 그대로 지속됐지만 그 접근법은 달라졌다는 평가 속에 춤에도 변화가 있었다.

모란봉 악단이나 삼지연 악단의 공연에서도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의 춤은 독립된 예술영역이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새삼 예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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