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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금강산

#한반도 리포트 l 2022-06-22

한반도 리포트

ⓒ Getty Images Bank

지난 3월부터 북한이 금강산 내 우리 측 시설인 해금강호텔을 철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4월에도 추가로 골프장 리조트를 해체한 정황이 파악됐다. 북한은 남측과 상의 없이 금강산 내 우리 시설을 상당부분 철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학 박사인 국립산림과학원 오삼언 연구원과 함께 북한에서 금강산의 의미와 금강산 관광의 역사를 살펴본다.


백두산과 함께 명산으로 꼽히는 ‘금강산’ 

‘누구의 주재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렇게 시작하는 ‘그리운 금강산’의 가사처럼 금강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백두산과 함께 우리나라 2대 명산으로 불리어 왔다. 

금강산은 높이 1,638m의 최고봉 비로봉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 북부, 강원도 회양군과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 있다. 북한의 대외용 월간지 <조선>은 지난 해 10월, 금강산의 가을 풍경을 실으면서 ‘금강산은 산악미, 계곡미, 고원경치, 호수경치, 바다의 해안경치를 비롯해 모든 경치를 관람할 수 있는 명승지의 집합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금강산은 김일성 주석의 부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2006년 우리 기업인 현대가 리모델링한 외금강호텔도 원래 명칭은 김정숙 휴양소였다고 한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작가 강소천이 노랫말을 지은 <금강산>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동요다.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이란 가사처럼 금강산은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인다고 금강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려서 봉래(蓬萊)라 하며, 가을에는 일만 이천 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든다 하여 풍악이라 부르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이라고 한다.


영화, 무용, 가극 등으로 재창조되는 금강산 설화 

금강산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상팔담을 배경으로 한 "선녀와 나뭇꾼"이야기가 대표적으로 상팔담은 물이 워낙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나무꾼이 날개옷을 감추는 바람에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나무꾼과 결혼해서 살게 되는데, 나중에 날개옷을 찾아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이 원래 내용이다. 

북한에서는 이 설화의 구조와 결말을 바꿔서 영화나 무용, 가극 등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설야의 <금강선녀>란 동화는 하늘로 올라간 선녀가 금강산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고, 그 전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큰 인기 누린 금강산 관광사업 

분단 상황에서 갈 수 없는 곳이었던 금강산이 우리에게 친숙해진 건 금강산 관광 덕분이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1989년 고향이 북한인 현대 고 정주영회장이 북한과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9년 뒤인 1998년 10월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남북합의서를 들고 돌아왔다. 

당시 북한에서도 정주영 회장의 방문을 주요하게 다루며 금강산 관광이 남북협력사업임을 분명히 했다. 다음 달인 1998년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남한 사람들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을 마주하게 됐고, 금강산 관광사업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2003년부터는 육로관광이 허용 됐고, 2004년엔 당일관광, 1박2일, 2박3일 관광 상품 등으로 까지 확대됐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은 100만 명을 돌파했고, 2008년에 2백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 KBS는 이를 기념해 온정각 앞마당 야외 특설 무대에서 금강산 열린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7월 뜻밖의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에 제동이 걸린다. 남한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재발방지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 했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고 2년 후인 2010년 북한은 금강산 지구의 남측 시설과 자산을 동결, 몰수했다. 2011년 북한은 현대 아산의 독점 사업권을 취소했고, <금강산 국제관광 특구법>을 채택해 남측의 관광 참여를 배제했고 2014년에는 ‘원산-금강산 국제 관광지대’를 신설한다는 정령을 발표했다.


중단된 금강산 관광

그러나 대북제재 등으로 북한의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 했다. 지난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정상이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도 조건 없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9년 북미회담이 성과 없이 마무리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됐고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 일대 남측 시설을 들어내라고 지시하기에 이릅니다. 올 3월부터는 우리 시설물들이 철거되기 시작했고, 금강산 관광은 다시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에서 굳은 악수를 나누던 남북 정상의 모습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장면의 배경에는 ‘금강산 전경’이라는 가로 6m81cm, 세로 1m81cm의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금강산이 남북화해와 협력의 상징이 되기를 바랐던 당시의 소망이 현실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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