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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한의 축구

#한반도 리포트 l 2022-12-21

한반도 리포트

ⓒ Getty Images Bank

지난 18일 세계인의 축구 축제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우승은 아르헨티나에게 돌아갔다. 우리 대한민국은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사실 한국의 16강 진출 확률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었는데 태극전사들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브라질과의 16강전이 열린 6일 새벽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은 축구 대표 팀을 응원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비록 경기는 4:1로 패했지만 ‘졌잘싸 대한민국’,‘졌지만 잘 싸웠다’고 대표 팀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그런데 코로나 19를 우려해 출전을 포기했던 북한의 월드컵은 어땠을까?

<한반도 리포트> 이 시간엔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허정필 박사와 함께 북한의 월드컵과 축구이야기를 해본다. 


중계권 지원받아 방영된 월드컵 경기 

북한의 조선중앙TV도 월드컵 경기 개막 소식을 전했다.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세계인을 사로잡은 장면 중 하나는 BTS 정국이 불렀던 월드컵 공식주제가 ‘Dreamers’였다. ‘Dreamers’는 공개된 지 사흘 만에 백 개 넘는 나라에서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해서 K팝과 월드컵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그런데 북한 방송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리고 북한은 KBS, SBS, MBC 등 우리 지상파 3사가 국제축구연맹 FIFA에 양도한 중계권을 지원받아서 월드컵을 녹화 중계했는데, 한국과 미국, 일본의 조별리그 경기는 중계에서 제외됐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속한 H조를 소개할 때는 한국을 ‘한개 팀’으로 소개했다. 심지어 경기장 광고판에 나온 한국 기업 이름과 화면에 잡힌 태극기를 흐리게 처리했고 미국 광고도 지워서 내보냈다. 

이례적으로 우리 대표 팀과 브라질과의 16강 경기는 방송했다. 손 흥민 선수가 남조선의 주장이라고 소개하면서, 경기 분석까지 비교적 중립적으로 전하기도 하고, 백승호의 골 장면은 하이라이트로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의 월드컵 출전 성적 

북한은 1958년 FIFA 가입과 함께 국제무대에 모습을 보였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이번 카타르 올림픽에서 FIFA의 공식 콘텐츠 플랫폼이 선정한 ‘월드컵 이변’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도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브라질, 포르투갈 등과 함께 일명 죽음의 조에 속한 북한은 브라질을 3대 0으로 이기겠다며 대표팀 감독이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J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출신의 정대세와 안영학 선수가 북한 대표 팀으로 출전해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자국 조별리그 경기를 생중계했지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최근 북한은 EPL(English Premier League)이나 분데스리가(Bundesliga) 등 해외축구경기를 녹화, 중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북한이탈주민들에 따르면 유명 선수별로 경기영상을 시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축구에 관심 높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북한은 ‘체육강국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기사를 자주 보도하는 등 김정은 위원장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소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초기부터 축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키우기 위해서 체계적인 훈련과 교육이 가능한 축구전문학교를 세운 건데, 2013년에 문을 연 평양국제축구학교가 대표적이다. 

축구영재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평양 국제축구학교에 선발된 어린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북한 당국은 스페인 등 외국에 국비로 유학을 보내기도 하고, 외국인 코치를 초빙하는 등 세계적인 축구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경평축구대항전의 전통 이어가야 

경평 축구대항전이라고 일제강점기 조선의 양대 도시인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축구단이 자존심을 걸고 치렀던 축구친선경기가 있다. 1929년 10월 첫 번째 대회에선 평양 팀이, 이듬해에는 경성 팀이 2:1로 승리했다. 이후 1933년부터 팽팽한 대결을 이어가다가 도시대항 축구대회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일제에 의해 중단됐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6년 마지막 대회 후 분단이 굳어지면서 경평 축구대항전은 더 이상 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1990년 남북통일 축구대회 등이 열리면서 남북축구경기가 새로운 교류의 장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북한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축구와 관련해 국가의 관심과 지원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축구 같은 종목은 개인 능력 못지않게 세계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북한은 코로나19 유행이후 국제대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북한 축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원과 아울러 국제사회와의 적극적인 교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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