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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제23회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대상 <길몽> 이월란

#글로벌 코리안 l 2021-10-08

글로벌 코리안

사진 제공 :  이월란

제23회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대상 <길몽> 이월란  

재외동포재단에서 해마다 주최하는 제23회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분 대상으로 <길몽>을 쓴 이월란 작가가 선정됐다. 

미국으로 이주한 지 33년이 된 이월란 작가는 현지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시가 아닌 단편 소설로 대상을 수상한 이월란 작가를 만나본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집에서 쫓겨났을 땐 자신의 차를 몰고 나갔었다. 백 번 아니 천 번쯤의 약속을 어긴 뒤 아이는 집을 떠났다. 아이는 가족 간의 정신적 유대감을 갉아먹는 벌레였다. 수진의 가족은 동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살가움과 안타까움은 이내 고통으로 이어지고 말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울며불며 붙들고 끌어안고 사정과 회유와 보상을 거친 뒤 바로 다음날 아이의 방에서 찾아지는 주사기는 희망 없이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주었다. 각자의 늪으로 매일 매일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중략)... 

너무 열심히 살아온 죄였을까. 지난날의 모든 어둠이 아이가 퍼먹던 숟갈 위로만 고스란히 내려앉았고 지난날의 모든 아픔이 아이가 마시던 컵 속으로만 고스란히 녹아내렸을까. 늘 화가 나 있던 아이를 되돌아볼 시간은 수진에게 없었다. 시간은 돈이었고 달리다 멈추면 곧바로 뒤처지는 것이 이민자의 삶이었다.  

                                                               - <길몽> 중에서 - 


이민자의 슬픈 가족사를 다룬 단편소설 <길몽> 

그동안 재외동포문학상은 고향이나 어머니, 가족, 이민생활 에피소드를 등을 다뤘다. 하지만 <길몽>은 이민자 가족의 아픔을 담았다는 데 특이점이 있다. 

심각한 마약 중독에 빠진 아들과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경을 다룬 작품인 <길몽>은 이월란 작가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참고해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가로 살아갈 용기를 얻다 

이월란 작가는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이자 북한강문학상과 미주동포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동안 한두 편 소설을 쓰긴 했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소설가로 살아갈 근건, 희망을 얻게 됐다는 이월란 작가. 그가 미국에 간 지 올해로 33년이 됐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결혼했고, 1988년도에 1.5세대인 남편과 미국에 정착했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던 이월란 작가의 시 한편 들어본다. 


당신을 읽다 / 이월란 


첫 페이지의 의혹을 넘겨버린 것도 세월이었다

더 이상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당신을 눕혀두면

눈 밖에 난 활자들도 어둠을 먹고 자란다


신비롭게 제본된 팔 다리를 흔들어 본다


사서처럼 당신을 들고 오던 날 편협한 장르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당신을 펼치고도 늘 화자였던 나는 바깥이 그리운 아내가 되고

숨 쉬는 것조차 다른 당신을 매일 덮었다


아이들은 생소한 이야기를 시작한지 오래다 

나의 눈높이로 들어 올린 당신은 한 번씩 버려진 문장처럼 뚝 떨어진다

글자보다 여백이 많은 감명 깊은 나라로 떠난 여행길에서도

당신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개미의 길처럼 작은 통로로 끊임없이 사라지는 주인공을 따라오는 사이

당신은 헌책방의 고서처럼 누렇게 뜨고 있다

신간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나는 돋보기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이 뭐였더라, 당신? 엄지와 검지에 침을 발라 한 끼의 그리움을 번역해낸다


한 번도 대출 받은 적 없는 목록마저 사라졌다

나의 환한 등잔 밑에 숨어 있던 책 속의 길


저자는 죽었다


나비효과처럼 팔랑이는 페이지마다 읽어서 도달할 경지였다면

화려한 세간 밑에서 먼지가 쌓였겠다

더 이상 속독이 되지 않는 느린 벤치 위에서 바람이 당신을 읽고 간다


오래 흘러야 강이 된단다


평생을 먹어도 배가 고픈 우리는 간단한 줄거리를 오래도 붙들고 있다

어느 날은 율법처럼 서 있던 당신을 성경 옆에 꽂아 두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당신을 꺼내어 일기를 쓴다


어느 페이지인가에 나의 혼을 접어 두었었다


평범하지 않은, 독특하게 

“누군가의 눈물을 쏙 빼놓는 슬픈 이야기,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평범한 이야기도 독특하게 쓰고 싶어요. 그리고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강아지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요. 

나의 글쓰기는 밝음 보다는 어둠에 있어요. 그리고 실험적인 글들에 끌림도 있구요. 해외에서 글쓰고 있는 문인들에게 파이팅도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LA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글은 혼자 쓰지만 누군가가 함께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한 거 같아요.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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