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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림 전시회를 연 홍기선 교수

2014-05-22

지난 14일, 경기도에 위치한 한 대학교 강의실. 학생들에게 언론학을 강의중인 홍기선 교수. 대학 명예교수와 석좌교수를 지내고 일흔이 훌쩍 넘어 다시 선 강단이지만 강의가 끝난 뒤에도 학생들과 토론을
즐기는 그는 늘 열정이 넘칩니다.

그의 열정과 사랑은 비단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난 13일엔 또 다른 제자들, 즉 탈북 대학생들을 돕기 위해 그림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언론학 전공 교수가 웬 그림 전시회냐구요?

홍기선
중고등학교때 미대를 가려다 못갔구요, 그때는 미대가면 밥굶는거라고 생각해서 그랬고. 대학교때도 저는 다른 전공을 하면서도 그림은 그렸어요. 그러다 졸업하고는 전혀 손을 못댔는데 아쉬움이 늘 있더라구요. 그러다 다른 일을 하면서 한번 손대보자 그래서 손대기 시작한게 3년 전부터예요. 실은 강의는 1년 전 부터 했으니까 한 2년동안은 그림만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지금도 월요일 목요일은 작업실에 나갑니다. 다 제껴놓고 그것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해요 작품이 혹시 팔리면 거기서 생기는 수익금을 제가 그동안 쭉 해오고 있는 탈북 대학생 지원에 기금으로 쓰겠다 그런 명분으로 시작했죠.


홍기선 교수와 탈북 대학생들과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연고로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탈북 대학생들을 남몰래 돕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홍기선
우선 제일 맘이 아픈거는 넘어오면서 고생 많이 한 아이들이 있어요. 몇 번씩 잡혀갔다가 얻어맞아서. 또 같이 넘어오다 부모님도 잃어버리고 또 여기서 굉장히 어렵게 생활하는 아이들. 학교 입학시켜준다던지 정착금 준다든지 등록금 주는거 국가 제도권에서 하는거예요., 그러나 그걸 어루만지지 못하는 틈새가 있거든요. 그 틈새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메우려고 하는 거니까. 국가에서 학원가라고 그건(돈은) 못주잖아요.


한 두명으로 시작한 학생들이 해마다 늘어 지금은 열두 명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홍기선
요새 웬만한 대학에서는 영어강의를 하는데 얘네들이 영어가 형 편없단 말이예요 대부분이 생활이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돈쓰는 법도 배웠고 그래서 공부보다는 아르바이트해서 핸드폰도 좋은거 사고 싶고 그런 유혹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대로 대학 다니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너희들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을 해라. 대신 아르바이트 비용을 우리가 대주마. 이런 착상을 해서 한 달에 한사람 앞에 30만원씩 대주고 있어요. 처음에는 몇 명 시작 안했는데. 취지에 공감해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지금은 12명이나 됐어요. 한 달에 12명 30만원씩 ,360만원이죠.


이번 개인전도 판매 수익금으로 좀 더 많은 탈북 대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섭니다. 홍 교수의 좋은 취지에 동참하는 사람들 덕분에 출품작은 전부 판매됐습니다.

홍기선
불쌍히 보아주셔서 그림을 다 사가셨어요. (몇 점이나?) 스물 몇점 정도. 옆에 있는 분들 고맙기도 하지만 민폐가 심하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왜냐 하면) 오신 분들이 그림을 사지 않으면 봉투 하나씩 갖고 오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하니까 제 제자들이 많이 왔거든요. 가능하면 장학생 수를 조금 더 늘리고 기금이 조금조금씩 줄어들면 2, 3년 후에 또 굿판을 벌여야죠.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초상화 풍경화를 비롯해 전부 사람 냄새나는 것들입니다. 화가에 대한 오랜 꿈을 이뤘지만 무엇보다 행복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홍기선
제 기억에 좋은 것들. 아름다운 것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아이들의 귀여웠던 모습. 지금은 다 커서 징그러울때도 있지만 어렸을때 그런 모습 있잖아요. 그걸 사진으로 둔게 아니라 그림으로 옮겨놓으면 훨씬 더 멋있더라구요. 옮기는 과정 자체가 좋은 기억을 재음미하고 재생하고 다시 곱씹고 하면서 그려요 저는 그러니까 과거의 아름다운 스토리 텔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린거죠.


홍기선 교수는 10년 전부터 탈북자들과 인연을 맺고 봉사를 시작했는데요. 이를 자신의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독립운동을 한 친할아버지, 선교사였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빚이 스스로를 봉사의 삶으로 이끌었다고 하는데요. 그가 뿌리는 나눔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 또 다른 베품의 나무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홍기선
한달에 30만원씩 주는게 너희가 30만원중에 5만원 갚아라. 근데 갚는건 언제부터 갚느냐. 고정적인 수입이 있을때부터 갚아라. 그리고 갚는거는 빚갚는게 아니라 너희 후학한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앞으로 언젠간 나한테도 이런 기적이랄까 기쁨이 일어났으면 하는게 뭐냐면 5만원을 누가 제일 처음 갚는가? (거기에 대한) 기대가 커요. 자리를 잡아서 한국 시민으로 정착을 하고 그리고 내가 받은 만큼 또 갚아야 겠다는 그런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그런 데 열명 중에 몇 명이 그런거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맥시멈 3명만 갚아도 성공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낯선 환경에서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 일자리를 찾는 일이 탈북 대학생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느린 호흡으로 그들의 적응을 지켜보며 도와야 한다고 홍기선 교수는 강조합니다.

홍기선
우선 우리가 그들에게 시간을 줘야 합니다. 진짜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뭔가? 근데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탈북정책이 그 사람들이 필요한 것 보다는 우리 머릿속에서 나오는 정책을 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도 보살펴 줄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이 있어야 겠어요. 정신적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다 있어요. 우리 기 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들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죠.


탈북 대학생들과의 인터뷰 주선을 한사코 거절하던 홍기선 교수! 자신의 작은 봉사를 크게 떠벌이며 학생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그림 파는 우아한 비렁뱅이라 부르며 탈북 대학생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홍 교수가 있어 이 사회가 조금씩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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