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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랩으로 북한실상 폭로하는 강춘혁

2017-01-05

랩으로 북한실상 폭로하는 강춘혁
지난 12월 서울 마포에서는 북한에서 온 랩퍼 강춘혁씨의 싱글앨범발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강춘혁씨의 랩에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남1①매우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자유를 찾는 그 의미가 와 닿았어요. 우선 자기 엄마는 아오지에서 결핵을 얻었는데 북한의 리설주는 아주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 그게 굉장히 비판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남2② 리듬감도 좋으시고 자신의 경험을, 아픈 경험들이지만 그래도 음악으로 표현해서 저희들에게 알기 쉽게 알려주시니까 되게 가슴에 많이 깊이 남는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여③신나기보다 진지했던 거 같아요. 뭔가 진심이 느껴졌어요 자기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리고 싶다, 라는 그 진심이 많이 느껴졌어요.‘ 현실이 얼마나 안 좋은지 말은 들었어도... 그러니까 북한에서 직접 온 사람이 가사를 써서 그 이야기를 하니까 뭔가 훨씬 더 와 닿았다고 해야 되나요?


북한이탈주민 출신 강춘혁씨는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진행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랩으로 북한 실상을 고발해서 관심을 모았는데요,
‘자유롭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음악에 가사를 얹으면 보고 듣는 사람들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힙합 랩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저 자체가 북한의 현실을 젊은 세대나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음악은 대중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도 있고, 또 사이트, 요즘은 너무 그런 게 많아서, 인터넷이 발달되다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가지고 사이트에 올려도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되게 된 거죠.

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강춘혁씨는 1998년 부모님과 함께 탈북했는데요, 이번에 발표한 신곡 ‘for the freedom'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내 인생의 절반을 이야기했다고 하면 될 걸요? 제가 한국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거고요. 또 한 곡에 너무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으니까 일단 북한에서 태어났고, 한국까지 오게 된 계기까지 노래를 담은 거죠.

북한을 탈출한 강춘혁씨 가족은 중국에 숨어 살았는데요, 그 때 강춘혁씨는 처음으로 랩을 접했다고 합니다.
특히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가사가 사춘기이던 강춘혁군에게 충격적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후 캄보디아와 베트남, 태국 등을 전전할 때 느끼던 외로움과 두려움에 힙합음악은 위로가 됐습니다
2001년 마침내 강춘혁씨는 한국에 들어왔는데요, 강춘혁씨가 북한에서 생활한 것은 열 두 살 까지지만 북한에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다 생생하게 납니다. 제 친구들은 다 기억력이 없더라고요. 어렸을 때 뭐 유치원 다니면서 갑자기 점심 급식이 나오다가 갑자기 끊긴 기억도 나고 항상 어릴 때 놀면서 그냥 애들이 노는 게 다 그냥 노는 방식이 뭐 조선편, 남조선편 해가지고 계속 군사놀이 하던 기억들이 나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먹을 게 없다 보니까 애들끼리 뭉쳐서 뭐 훔치러 다니던 기억도 나고... 다 그런 기억들이죠. 그 때는 진짜 마을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던 상황이었고, 굶어죽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그런 상황이었고. 그 이후에도 사람들 계속 통해서 듣고 있지만 지금도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평양 빼고는 거의 대부분... 평양은 사회주의 허구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사람들에게, 대중들에게, 다른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구세상이지 그 껍데기 안을 보면 더 어려운 것들이 많은 것... 그리고 아직까지도 어렵다고 봐요

강춘혁씨는 랩퍼로 활동하기 전엔 그림을 통해서 북한의 실상을 알렸습니다. 남한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북한 인권탄압을 고발하는 책에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 독일과 영국, 체코,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북한실상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 5번의 전시를 했고요. 그 다음 대부분 다 해외에서 했는데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 더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고...대표적인 게 뭐 인도네시아 가서도 했었고, 독일 전시회, 오스트레일리아 전시회에서도 했었고... 그 다음에 유럽 쪽에 바르셀로나에서도 한 번... 궁금해 하는 북한사람들의 일상이나 우리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그런 것들을 회화적으로 푼 작품들도 있고, 아니면 좀 더 그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드로잉으로 가벼운 드로잉으로 풍자 형식으로 작품을 만든 것도 있고요.

강춘혁씨가 랩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북한현실을 제대로 알려서 사람들이 북한인권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라고 또한 통일의 작은 밑거름이라도 되고 싶은 바램 때문인데요.
실제로 강춘혁씨의 랩과 그림은 북한을 쉽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신곡발표장에서 만난 관객들과 강춘혁씨의 얘기를 차례로 들어보시죠.

남1① 통일이 되면 서로 섞여야 하니까 통일이 되기 전 준비단계라고 할까? 이런 걸로 서로 문화도 교류하고 서로 먼저 알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열렬히 응원하고 싶습니다.
여② 솔직하게 말하는 그 가사들을 듣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시 한 번 어떤 상황인지, 북한이... 그리고 또 이게 통일을 하려면 일단 북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서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되게 좋은 경험이었던 거 같아요.
남2③ 6.25 전쟁 때문에 우리가 갈라진 그 시간이 길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잊어버린 거거든요. 그래서 많이 알려주고, 많이 알려지다 보면 관심을 갖게 되고, 우리나라는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나라를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한다,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우리나라를 하나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도 가지게 될 것이고 여기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많이 개선되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소통이 되고,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면서 열심히 계속 작업을 해나가야죠. (강춘혁)


강춘혁씨의 바램처럼 2017년 올해에는 남북한으로 떨어져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목요진단 한반도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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