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인물

영상으로 남북한 소통을 꿈꾸는 한정선감독

2017-02-09

영상으로 남북한 소통을 꿈꾸는 한정선감독
기획부터 촬영, 편집등을 모두 혼자 담당하는 1인 미디어 제작자, 한정선감독.
한정선감독은 전문기술과 예술성이 함께 요구되는 방송영상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굳혀가고 있는데요. 북한이탈주민이기도 한 한감독은 본인이 영상분야의 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꿈 자체를 아예 못 꿨죠. 내가 편집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그랬는데 북한은 상상도 못하죠. 최고 엘리트들이 모이는 집단이고, 일반인이 꿈꾸기에는 좀 너무 힘든, 높은 그런 거고. 여기 오니까 누구든 내가 원한다면, 그래서 그 일을 좋아한다면, 이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좀 힘든 직업이에요. 맨날 밤새야 하고, 맨날 카메라 가지고 산을 뛰어야 하고, 그러니까 열정이 있어야 하거든요. 뭐든. 그러니까 내가 즐기지 않으면 절대로 못하는 일이거든요.

어떻게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해봤던 영상감독이 됐을까요.
40대 초반인 한정선감독이 한국에 온 것은 14년 전.
당시 한감독은 아이만 데리고 남한에 들어왔기 때문에 경제적인 자립이 급선무였습니다. 직업을 얻기 위해서 기술을 익혀야했는데, 남한에 와서 처음 접한 컴퓨터에 관심이 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컴퓨터가 되게 궁금했어요. 자꾸 한글, 엑셀 이러면서 제가 하나원에서 처음 컴퓨터를 만졌거든요. 타자연습도 그 때 처음 했었어요. 그런데 되게 신기한 거예요. 그런데 컴퓨터를 아무 컴퓨터나 가게 되면 뭐든 다 열리고, 한글도 되고, 엑셀도 되고 모든 게 다 될 줄 알았는데 어떤 컴퓨터는 되고 어떤 컴퓨터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왜 그러죠?’ 했더니, 이건 프로그램이 안깔렸다는 거예요. ‘프로그램이 뭐죠?’ 한글은 뭐고, 엑셀은 뭐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아, 안 되겠다, 왜 그러지, 왜 그러지 하다가 한국에 나와서 몇 달 동안 일을 하다가 생활비 조금 마련한 다음에는 학원에 들어갔죠. 그래서 PC정비부터 배웠어요. 한 번은 사무자동화반 다녔거든요/그리고 모션그래픽이라고 해서 한국에 와서 컴퓨터 관련을/집중적으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정선씨는 컴퓨터 관련 기술을 익힌 덕에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직장도 생활도 자리를 잡는가 싶었는데 사춘기를 맞은 아이가 힘들어했습니다. 고민 끝에 한정선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1년쯤 지나자 다행히 아이도 안정을 되찾았고 한정선씨는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요, 마침 그 회사의 홍보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방문한 영상팀이 그녀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난생 처음 접하는 영상촬영현장이 신기했던 한정선씨는 마침 컴퓨터에도 익숙한 덕분에 이것 저것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는데, 마침 영상팀을 이끌던 감독 역시 북한이탈주민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한정선씨는 방송영상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냥 아르바이트식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그냥 이 회사에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쭉 왔는데 이 일을 하면서 제가 너무 즐기고 있는 걸, 저를 발견했거든요. 그래서 이 일을 정말 너무, 그러니까 속된 말로 미친듯이 하는 거예요. 궁금했어요. 이게 영상이 뭔지. 그러면서 점점 영상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그리고... 거의 한 하루에 한 3시간 정도밖에 안 잤던 거같아요. 공부하느라고 낮에는 나가서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 듣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이런 거 피디님 하는 거 보기도 하고, 뒤에서 또 서포트도 해주고 하다가 저녁에 밤에 한 11시쯤 집에 들어와서 영상들에 대해서. 그럼 그 (영상관련)카페 들어가서 내가 아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질문을 못하니까 남들이 질문한 거 보면서 아, 이런 거 나도 당했었는데 경험했었는데 이거 어떻게 해결했지? 하면서 답글 올라오는 거, 이런 것들 체크하면서 많이 한 2-3시간 정도 공부하고 새벽 3시, 4시쯤 자고,

그렇게 열정 하나로 시작해 영상전반을 익혀가고 있을 무렵. 한정선씨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남북하나재단으로부터 한정선씨 같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사례를 영상물로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겁니다.
남쪽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비해 영상기술이나 감각이 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하던 한정선씨는 정면돌파를 결심했습니다. 본인이 제일 잘 아는 것, 낯선 이곳에서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정착했는지 그 내용에 집중하기로 한 겁니다.
그 결과, 영상에 담긴 한정선씨의 진심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하나원이라고 있어요. 한국에서 금방 오게 되면 받는 교육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저희 영상을 하나원 교육생 거기다가 전시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이 계속 들어온데요. 그러니까 그런 일자리가 있는 줄도 몰랐던 거예요. 다양한 분들을 제가 일부러 섭외했었거든요. 딸기농장, 엘리베이터, 꿀벌, 그 다음에 가구하시는 분, 그 다음에 에어컨 하시는 분, 여러 가지 이런 분들을 다양하게 했단 말이에요. 그러다보니까 아, 이런 직업군도 있구나, 그런데 이런 고생을 하는구나 이 사람이 이런 소질이 있어서 이렇게 나갔구나, 그러면 나도 이런 거 해볼까? 이렇게 되묻는 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성공하는 거 아닌가요? 저 너무 기뻤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저 사람은 분명히 자기 적성이나 자기 진로를 찾기 위해서 헤매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게 영상의 힘이고, 또 내가 만들어가는 어떠한 컨텐츠의 힘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좀 많이 해봤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자신같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한정선씨에게는 자부심이자 보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영상감독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한정선씨에게 뜻밖의 선물같은 기쁜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상록수 영화제에서 저희가 탈북민들 취업 관련해가지고 영상 찍어가지고 제출을 했었거든요 영화제에서 그런데 상 받았죠. 우수상 받았죠. 상에 대해서 약간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좀 쉽게 쉽게 누구한테나 차려지는 혜택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우리가 상을 받은 거예요. 내가 뭔가 이루고자 하고, 내가 목표하고, 내가 열심히만 하면 상을 주시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공평한 세상, 내가 노력한 것만큼 내가 취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인거 같아요. 너무 그 때 놀랐고, 실감이 안 나고 우리가 어떻게 우수상을 받지? 막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아, 하면 될 수 있겠구나. 이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도, 더 큰 것도 우리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정선감독은 영상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살았던 북한의 모습을 남한에 소개하고, 또 자신이 경험했던 남한을 북한에 전하면서 남북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는데요,
통일이 되면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 아름다운 곳이 참 많아요. 공기 좋고, 아름답고, 그리고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게 많거든요. 그래서 아름다운 여행지나 이런 것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어요. 북한에 유명한게 금강산, 묘향산이 있잖아요. 저는 아직 북한에서 백두산도 못 가봤죠. 금강산, 묘향산이런 데는 아무나 가는 게 아니에요. 진짜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이 간다던가 아니면 그 지역 사람이나 간다던가, 못가거든요. 그래서 한 번도 못 가봤는데 그런 유명한 것들을 좀 빨리 되어야 되겠죠. 통일이. 그래야 내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찍을 수 있잖아요. 저도 나이가 점점 들면 못 찍으니까. 그래서 통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고, 가서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 또 때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들, 그런 걸 좀 찍고 싶어요. 그리고 영상에 남기고 싶어요.

한정선감독이 만든 북한의 아름다운 절경을 전세계인이 감상하게 될 그 날을 기대하면서 목요진단 한반도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