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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애간장을 녹이는 맛, 강구항에서 만나는 영덕 대게

2013-03-15

애간장을 녹이는 맛, 강구항에서 만나는 영덕 대게
찜통에서 김이 오른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띠리리링~. 드디어 타이머가 울린다.
찜통 뚜껑이 열린다. 입 꼬리가 저도 몰래 올라가고 꼴까닥 군침이 넘어간다. 하얀 김이 주위를 감싸고 행복감이 밀려온다.

울진? 영덕? 포항? 대게 원조의 고장은?

또다시 대게 철이 다가오고 있다. 요즘이야 무슨 음식이던 ‘철’이란 것이 없고 또 대게 역시 사시사설 먹을 수 있어 새삼 철을 논한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의 에너지를 제때에 제대로 받은 재료와 그것으로 만든 음식은 신이 주신 귀한 선물이니 ‘제철’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대게 철이 바로 지금? 대게는 냉수성 어종이라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잡히는데 3~4월이 대게의 제이다. 6월 산란기를 앞두고 있어 살이 꽉 차고 다리와 등껍질이 딱딱해진다. 또 6월부터 10월까지는 금어기다. 자, 그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게의 고장은 어디일까? 원조는 어디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원도 고성에서 삼척 울진을 지나 포항까지 동해안 전체에서 대게가 잡히니 그놈이 그놈이다. 그렇다면 영덕과 울진은 어떤 상황이기에 이리도 원조 경쟁이 치열할까? 먼저 잡히는 양으로 봐서는 울진이 최고다. 해안선 길이가 100km에 이르고 죽변항, 구산항, 후포항이 포진해 있으며 어획량도 최고다. 그런데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동해안에서 잡은 대게가 대부분 영덕에 모였다가 내륙 지방으로 운반되었기에 대게하면 영덕이라는 지명이 자연스레 연결된 것이다.

바람결에 솔솔솔~ 대게 찌는 냄새

그렇다면 가장 이름난 영덕 강구항 대게 골목으로 가보자. 종업원이 여럿인 크고 근사한 집부터 선술집처럼 작고 아담한 집도 있다. 그 중 맘에 드는 집을 골라 들어가며 대게를 주문한다. 이 때 대게는 큰 것보다 작고 단단한 것을 골라야한다. 주문하고 나면 대게를 찜통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찜통에 넣기 전 대게 입 주위에 뜨거운 증기를 팍 씌워 숨을 죽인다. 끓은 물을 입주위에 붓기도 하는데 산채로 찜통에 넣으면 몸부림치다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절단 부위로 즙에 흘러나와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등을 뒤집어서 쪄야 내장이 흘러나오지 않고, 중간에 뚜껑을 열면 몸통 속 게장이 다리살 쪽으로 흘러 들어가 다리 살이 검게 변하게 되므로 도중에 열어보면 안 된다.

먹을수록 안달이 나는 바다 속 별미

이제 그 맛을 한 번 보자. 발갛게 잘 익은 색은 미각을 자극한다. 다리 하나를 들고 가위로 껍질 한쪽을 잘라 벗겨내면 포실포실 통통한 속살이 수줍은 듯 탐스럽게 드러나고 김이 솔솔 오른다. 복숭앗빛 대게 살은 보기만 해도 꼴깍꼴깍 침이 넘어간다. 한쪽 끝을 입에 넣고 빨대를 빨 듯 후루룩~ 빨면 담백하고 쫄깃쫄깃한 게살이 입속으로 후루룩 빨려 들어온다. 만족스럽고도 아쉽고도 행복한 맛이다. 그렇게 다리를 먹다보면 몸통이 기다린다. 대게 몸통의 게딱지를 따면 푸른빛이 도는 내장이 있다. 게딱지에 내장을 긁어모은 후 밥을 두어 숟가락 넣고 참기름과 김가루를 넣어 쓱쓱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참으로 기막히다! 대게 다리 중 빼먹기 부실한 것으로는 국을 끓인다. 그 맛 또한 기막히다. 달착지근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내는 대게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값이 좀 비싸다는 것이 흠이긴 하다.

임금님도 맘껏 못 먹는 대게 요리

이렇게 맛있는 걸 임금님이 가만 두셨을까? 당연히 아니다. 역시나 대게는 임금님의 진상품이었다. 특히 영덕대게는 태조 왕건과 인연이 있으니 서기 931년 왕건은 예주(지금의 영덕 영해지역)를 순시할 때 수라상에 대게가 올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덕군은 영덕대게 축제 중에 ‘태조 왕건 행차와 대게진상 체험’행사를 열기도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조선 초 어느 임금님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수랏상에 오른 대게를 임금님이 너무나 맛있게 자셨다고 한다. 그런데 수염에 대게 살을 묻히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이 임금의 체통과 근엄함에 맞지 않아 한동안 수라상에 대게를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천하의 임금이라도 맛난 것 맘대로 먹지 못한다니 왕의 자리도 마냥 부럽지는 않다. 속담에 ‘게 먹고 체한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소화가 잘된다는 얘기다. 또 ‘사돈 되는 사람과는 게를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 체면을 지키고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과 먹기에는 다소 곤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손은 바쁜데 체면은 차려야하고 입으로 들어오는 건 없지만 그 맛에 안달이 나니 대게는 참으로 애간장을 녹이는 음식이다. 그러니 입에 묻히고 먹어도 흉이 되지 않는 맘 편한 사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가며 마음도 지갑도 비우면서 여유롭게 즐겨야함을 대게를 먹으면서 터득한 ‘길 위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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