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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즐거운 자리에 함께하는 친구, 낙원동 떡골목

2013-03-29

즐거운 자리에 함께하는 친구, 낙원동 떡골목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 속 호랑이도 좋아하던 떡, 요즘은 빵에 눌려 기를 못 펴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들에게 떡만한 먹거리가 없다. 구멍이 뻥뻥 뚫린 투박한 시루에 베보자기를 깔고 포실포실 쌀가루를 얹는다. 켜켜이 팥을 넣기도 하고 콩을 뿌리기도 한다. 뚜껑을 덮고 장작불을 때면 살며시 올라오는 김……. 모락모락 오르는 김을 한없이 바라보며 시루 곁을 떠나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켜켜이 팥을 넣은 그 시루에서는 팥 시루떡이 쪄질 것이고 콩을 넣은 시루 속에서는 마구설기 콩떡이 익어갈 터……. 군침을 삼키며 시루 곁을 지키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 버린다. 떡이 다 되어서 뚜껑을 열고 김이 몽실몽실한 떡 한 덩어리 받아들고 좋아라 하는 꿈을 꾸면서…….

남주북병, 떡이 맛난 골목

이런 날은 낙원동이 생각난다. 예전의 그 질박한 시루는 보이지 않지만 명절이 되거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는 날이면 김을 올리던 떡시루의 추억과 흔적이 낙원동 떡집들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낙원동(樂園洞)’. 그런데 이름이 참으로 생경스럽다. 으리으리한 밀레니엄 플라자나 교보문고, 인사동의 산뜻함을 보다가 낙원동에 오면 참으로 오래된 허리우드 극장 건물과 그 밑의 시커먼 공간에 후줄근한 뒷골목인데 낙원(樂園)이 웬 말인지……. 영 이해가 되지 않아 찾아보니 이 이름이 붙은 때는 일제강점기로 탑골공원 옆, 즉 공원 옆에 붙어있어 낙원이라고 했단다. 그래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는 전국을 통틀어 공원이라고는 탑골공원 하나가 유일했다면 얘기가 좀 될까? 아무튼 호랑이도 좋아하는 떡들이 눈길을 끄는 떡집이 이곳에는 십여 호 된다. 조선 왕조가 몰락하면서 궁중을 나온 상궁이나 나인들이 이곳에서 떡장사를 했다고 한다. 또 낙원동이 북촌과 종로 시전을 잇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데 북촌에는 권세깨나 누리는 양반들이 살고 종로에는 시전 부자들이 살면서 시시때때로 떡을 해먹는 호사를 부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길목의 시장역할을 하던 낙원동에 자연스레 떡집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100년 전통의 떡집이 우르르

서로들 원조라고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역시 낙원떡집이라는 의견이 대세, 외할머니 고익보-친정어머니 김인동-딸 이광순 씨로 이어져 오는 3대째 궁중 떡 전문집으로 오색단자, 갖은 편, 두텁떡 등이 유명하다. 그 맞은편에는 종로 떡집이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예쁜 떡이 즐비한, 역시 1백년을 이어온 전통 떡집이다. 또 남문떡집은 신행떡 전문이다. 결혼 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시가와 친가를 방문하는 것을 '신행'이라 하며 이때 가지고 가는 음식 다섯 가지가 있으니 고기, 과일, 술, 떡, 한과가 그것으로 이중 떡을 '신행떡'이라 부른다. 신행떡에는 찰떡류만 사용하는데 이는 사돈지간이 찰떡처럼 잘 붙어 사이 좋으라는 의미고 되도록이면 칼질을 하지 않는다. 칼질을 하면 사이가 갈라진다는 생각 때문이며 신행떡은 차고 넘치게 담는 것이 예의다.

남의 떡으로 설을 쇠볼까?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 1569 ~ 1618]이 유배시절 지은 조선시대 최초의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을 보면 ‘서울에서 철따라 먹는 음식으로 봄에는 쑥떡ㆍ송편ㆍ두견화전ㆍ이화전이 있고, 여름에는 장미전ㆍ수단 ....(중략)..... 가을에는 국화병ㆍ찰떡......(중략).....이 있으며, 겨울에는 ....(중략)..... 밀병ㆍ설병 등을 사시 내내 만들어 먹었다’고 되어 있다. 그 옛날 이 골목에서 이토록 많은 종류의 떡이 빚어지고 또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참고로 떡에는 찌는 떡, 빚는 떡, 치는 떡, 지지는 떡의 네 종류가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시루떡은 찌는 떡의 대표이고, 인절미는 치는 떡, 경단은 빚는 떡 그리고 지지는 떡은 화전 등이다. '반기살이'란 옛말이 있는데 반기란 잔칫집에서 손님이 돌아갈 때 음식을 싸 보내는 것을 말한다. 물론 떡이 빠진 '반기살이'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떡은 필수다. 요즘도 떡을 많이 나누어 먹는데 회갑잔치와 돌, 백일이 그 예다. 잔치 집에 빠지지 않는 먹거리요, 좋은 일의 상징이며, 예쁜 모양과 화려한 색으로 외국인의 관심을 끄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우리의 떡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끈끈한 정을 나누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떡골목과 찰떡궁합, 악기골목

약식, 찹쌀떡, 방울증편, 송편, 개피떡, 호박콩찰떡 등 알록달록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떡이 즐비한 떡 골목 위쪽은 낙원악기상가다. 전통 악기에서부터 현대 악기, 동양악기에서 서양악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악기들을 판다. 피아노, 기타, 우크렐레(uklee또는 uklelele)가 나란하며 없는 것이 없다. 떡과 음악. 어찌 보면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뗄 수 없는 관계다. 크고 작은 경조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며 동네잔치에 빠질 수 없는 ‘흥 돋음제’들이 탑골 공원 때문이 아니라 떡과 음악의 여흥과 즐거움 때문에 ‘낙원(樂園)’이라 다시 해석해본다. 두텁떡과 팥 시루떡 그리고 약밥을 한 보따리 사들고 나오는 종로통 길엔 보석상가가 즐비하고 지하상가 주변엔 예쁜 한복을 전시하는 주단 집에 몰려있다. 떡집과 보석집과 주단집과 악기집이 모여 있는 이곳 종로통은 언제라도 풍악을 울리며 경사스러움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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