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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다에서 나는 사랑의 묘약, 넌 누구냐? 천북항 굴구이 골목

2013-02-15

바다에서 나는 사랑의 묘약, 넌 누구냐? 천북항 굴구이 골목
포구에는 고단한 작업을 마친 갯배들이 달고 곤한 잠에 빠져있다. 그 옆으로 갈매기가 조심스레 날고 도시 생활에 지친 이방인은 그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힘이 되는 자연 속 풍경이다. 저 멀리 거뭇거뭇 갯벌이 펼쳐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발밑에서 빠지직빠지직 굴 껍질 밟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굴 껍질이 포구 여기저기에 수북하다. 여기는 천수만의 한 구석인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의 천북항 굴구이 골목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 석화는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고 아낙들은 부지런히 석화를 따낸다. 우리말로는 ‘굴’ 한자로 ‘석화(石花)’라 쓴다. ‘돌에 핀 꽃’이라는 뜻이다. 게딱지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껍질 안에 뽀얀 속살을 감추고 있는 모양새가 돌에 핀 꽃이 맞다. 어여쁘다. 그 꽃을 따기 위해 머릿수건을 쓰고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찬바람을 달래가며 아낙들은 뻘밭을 헤맨다.

줄지어 늘어선 100여 호의 굴구이집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 나지막한 바위산이 해변을 둘러싼 천수만은 개펄이 발달되어 있어 굴의 서식 조건에 알맞다. 그 곳 개펄에 돌을 뿌려놓으면 그것이 굴 밭이 되고 바닷물이 들고나며 자연스레 굴 종자가 몸집을 키워 석화로 자라난다. 물이 빠지고 개펄이 드러나면 아낙들은 호미를 들고 나가 한껏 자란 석화를 캐낸다. 자연이 선사한 일터에서 바다의 꽃을 따는 그들의 손에는 석화가 묵직하다. 촉감이 탱글탱글하며 맛이 뛰어나다. 이 향긋하고도 비릿한 굴 향에 전국각지에서 미식가들의 발길이 몰려드니 고만고만한 굴구이 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100여 호가 넘는 석화구이 집이 성업 중이고 갓 잡아 물기가 뚝뚝 뜯는 석화가 집마다 산처럼 쌓여있다. 번개탄 위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 석화를 우르르 쏟아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탁 탁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린다. 하얗고 뽀얀 속살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 미쳐 숨 쉴 새도 없이 입으로 직행. 음~ 그래! 이맛이야!

익는 정도에 따라 다른 오묘한 맛

원래 날것으로도 먹는 놈이라 석화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구워먹어도 맛있다. 익는 정도에 따라 오묘한 맛 차이가 있으니 목으로 후루룩 넘어가는 것부터 쫄깃쫄깃 씹히는 맛까지 입속 즐거움에 콧노래가 절로 난다. 8월까지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부터 살이 차기 시작하는 굴은 겨울이 되면 최적의 상태가 된다. 해서 찬바람을 맞으며 석화를 캐는 것이고 한 겨울 석화를 따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겸 허기진 배에 요기를 할 겸 바닷가에서 석화를 굽기 시작한 것이, 그 맛이, 소문나 이렇게 굴구이 골목이 생겼다. 어디 굴구이뿐이랴. 굴전, 굴밥, 굴칼국수, 굴국밥 등 굴로 만드는 요리는 끝이 없고 또 그 맛의 퍼레이드는 지루한 겨울을 기다림의 겨울로 바꾸어 놓았다.

석화를 향한 동서양의 무한사랑

로마황제들도 굴이라면 사족을 못 썼으니 수많은 노예들을 맛난 굴이 난다는 영국 해협으로 보내 굴을 구해 오도록 시켰다. 그렇다면 서양 사람들만 굴을 즐겼을까? 역시 아니다. 고려시대의 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海草)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여기서 ‘구조개’란 굴조개를 뜻한다. 또 허준의 동의보감에 ‘굴을 모려육’이라고 하는데, 맛이 있고 몸에 아주 좋으며, 피부를 보드랍게 하고 안색도 좋게 한다. 바다에서 나는 족속 중에 최고로 귀한 것이다’라 했다하니, 동서양을 불문하고 굴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굴의 무엇이 그렇게 좋을까? ‘굴은 바다의 우유!’ 그런데 철분과 아연의 경우 굴이 우유보다 200배, 요오드도 200배, 비타민 B12는 50배 이상이다.

행복을 만드는 시간, 굴 먹는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곁들이며 석화를 까먹는 자리는 훈훈하기 이를 데가 없다. 손이 바쁜 가운데서도 말하느라 입이 바쁘고 또 먹여주고 먹느라 분주한 석화구이 자리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석화 껍질은 산더미가 되었다. 이쯤 되면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탱글탱글 방금 깐 생굴을 넣고 후루룩 끓인 굴칼국수가 뜨끈하니 속을 덥혀준다. 이 자리의 마무리다.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피부가 하얗다.’는 말이 있다. 천북항에서 굴을 먹으며 더욱 예뻐지고 건강해지며 사랑도 단단하게 다져보자. 올겨울도 석화구이가 있어 행복하다. 볼 붉은 새악시처럼 천북항에 저녁놀이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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