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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조선왕조 최초 왕비는 누구일까? 조선 개국 여행

2013-01-25

조선왕조 최초 왕비는 누구일까? 조선 개국 여행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왕조가 5백년 역사를 이어가는 것은 주목해볼 일이다.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지속되었던 조선왕조의 첫 임금은 태조 이성계! 그렇다면 첫 왕비는 누구일까? 햇살 좋은 정릉으로 나들이 삼아 역사여행을 시작해본다.


조선최초의 왕비를 만나러 가다.


정릉에 도착하니 푸르른 녹음에 가슴이 신선해진다.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정릉은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가 가장 사랑한 여인 신덕왕후 강 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에게는 정실부인이 두 명 있었으니 한 명은 신의왕후 한 씨요, 다른 한명은 신덕왕후 강 씨다. 시골에서 동고동락하던 아내인 향처 말고도 관직과 형편에 따라 개경에 경처를 두었으니 당시 고려의 풍습을 따른 것이다. 향처인 신의왕후 한 씨는 태조의 첫째 부인으로 이성계가 아직 벼슬을 하지 못하던 때에 시집와 6남 2녀(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경신공주, 경선공주)를 두었고 경처였던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보다 스무 살 가량 어렸지만 젊고 총명한데다 용모 또한 아름다워 태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향처인 한 씨 부인이 조선 건국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났고, 강 씨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원년(1392년) 현비로 책봉되었으니 강 씨가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인 것이다.

세자 책봉을 둘러싼 미움과 갈등

이성계를 위험에서 구했으며 조선 개국에 힘이 되어준 강 씨에 대한 이성계의 총애는 매우 깊었다. 당연히 한 씨 소생의 자녀들은 강 씨가 싫었다. 이성계는 즉위 직후 사회적 안정을 위해 왕세자 책봉을 서둘렀고 이 과정에서 강 씨의 소생인 방석(당시 11살)을 세자로 결정했다. 한 씨 소생들의 불만은 당연했고 그 중에서도 조선개국에 공이 컸던 방원이 가장 심했다. 뛰어난 무예와 사병들까지 거느린 방원이 왕위에 오른다면 강력한 왕권을 휘두를 수 있기에 사대부 중심 사회를 꿈꾸던 정도전은 물론 태조와 신덕왕후에게도 그런 방원은 두려운 존재였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반면 방원은 아버지 태조 임금에 대한 섭섭한 마음까지 강비에게로 투사되어 강 씨에 대한 미움과 분노는 더욱 증폭되었다. 방원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그것이 병이 되어 앓다가 신덕왕후는 세상을 떠났다. 태조는 궁궐에서 가까운 황화방(현재 정동 영국대사관과 경향신문사 사이)에 신덕왕후와 더불어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마련해 능호를 정릉이라 지었으니 오늘날 정동이란 지명은 정릉에서 유래하였다. 이듬해에는 정릉 동쪽에 능침사찰로 흥천사를 세웠는데 170칸에 120여명의 승려가 기거하는 거대한 규모였다. 신덕왕후를 잃은 애통함을 달래며 능과 절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신덕왕후 소생들과 시간을 보냈으며, 신덕왕후 능에 제를 올리는 흥천사 종소리가 나야만 태조는 비로소 수라를 들고 또, 잠자리에 들었다 한다. 결국 방원은 세자 방석을 보필하고 있던 정도전, 남은 등을 제거하고, 신덕왕후 소생인 방번과 세자 방석을 살해하는 왕자의난(1398년)을 일으켰다. 상심한 이성계는 방과(조선 제2대 왕 정종, 재위 1398~1400)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정종에 이어 방원이 결국 왕위에 올랐으니 조선 제3대 왕 태종(재위 1400∼1418)이다. 왕위에 오른 방원은 태조 사망 이듬해(1409년)에 신덕왕후의 정릉을 도성 밖 양주 땅 사을한록 즉 지금의 자리로 내쳤다. 강 씨와 함께 묻히길 원했던 태조는 경기 구리의 건원릉에 모셨고 ‘능’에서 ‘묘’로 격하시킨 정릉은 봉분마저 깎아버려 민묘(일반 백성들의 묘)와 다를 바 없었다. 일반적으로 왕실의 초장지(처음에 묻힌 곳)는 천장(묘를 옮김) 후에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봉분을 남겨두지만 태종은 이도 무시했다.

태조, 신덕왕후, 태종의 엇갈린 운명

이 후 정릉은 어찌되었을까? 주인 없는 무덤으로 방치되다가 260년 만인 현종 10년(1669년) 송시열에 의해 신덕왕후라는 존호를 되찾았다. 정릉의 정자각이 완공되고 신덕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안치하던 날 정릉 일대에 소낙비가 쏟아졌는데, 이 비를 백성들은 ‘세원지우(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주는 비)’라 불렀다. 그런가하면 덕수궁에서 눈여겨볼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흥천사 종이다. 강 씨에게 제 올림을 확인하는 흥천사 종소리를 들어야만 태조가 마음을 놓았다는 흥천사 종이 덕수궁 광명문 안에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덕수궁을 이리저리 돌아보노라니 태조와 신덕왕후 태종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조선 최초의 국장인 신덕왕후의 장례가 성대히 펼쳐지고 있다. 눈시울을 붉히는 태조와 뒤쪽에서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꽉 쥔 태종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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