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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 삼지내 마을

2012-12-28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 삼지내 마을
한 해가 훌쩍 지나간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다. 패스트 푸드점에서 햄버거가 나오듯 모든 것이 빠르다. 미처 생각해볼 시간도 없이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지켜보며 한 해를 마무리할 가족여행을 계획해본다. 후다닥 가버린 시간을 돌아보고 제대로 된 시간을 갖고 싶어 창평의 슬로시티(slow city) 삼지내 마을로 향해본다. 가족 모두의 일이 끝나고 출발하니 밤이 늦어서야 도착, 마을길도 돌담도 논밭도 어둠에 가려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새까만 하늘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책속에서 보던 겨울밤의 별자리 그림처럼 선명한 광경에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아이들은 목을 잔뜩 젖히고 밤하늘 별무리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저것이 모두 쏟아져 내리면 어쩌나 걱정을 하는 건 아닌지, 목이 아파 견딜 수 없을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겨울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삼지내 마을과의 첫 만남이었다.

밤새 꺼지지 않는 가마솥의 불길

새벽 두시. 방바닥은 따끈하고 몸은 천근같이 무거운데 정체모를 소리가 들려온다. 여닫이문을 살짝 열고 밖을 살핀다. 커다란 가마솥에 벌겋게 불이 오르고 있다. 솥 위로 허연 김이 엄청나게 올라와 산신령이라도 왕림하신 듯하다. 얼핏 뵌 주인 어르신들 같기도 한데……. 이 밤중에 뭘 하시는 걸까. 나가볼까? 고민은 했지만 까무룩 정신이 없다. 오전 일곱 시. 아직도 가마솥엔 불이 벌겋고 두 분은 여전히 그 앞을 지키신다. 밤새 그리하셨단다. 아니 도대체 뭘 하시는 건가요? “뭣이긴 뭤이어. 시방 엿 만든당께.”아하~. 밤새 어르신들은 그렇게 엿을 고고 계셨나보다. 어르신은 손잡이가 기다란 바가지로 가마솥 안을 휘휘 저어 주르륵 따라본다. 제법 걸쭉하다. 이것이 두 번째 솥이란다. 좀 더 고아 떡 찍어 먹는 조청을 맹글고 또 꾸덕꾸덕 해진 것을 맞잡고 늘여 반을 접고 또 접고 해서 엿을 맹글더니 “이거 함 묵어볼터?”하며 엿 광주리를 내어 놓으신다. 달착지근한 것이 이에 붙지도 않고 맛나다. 참으로 느긋하고 푸근하며 달착지근한 아침이다.

뜨끈 따끈 든든한 국밥 한 그릇

그러는 사이 하늘은 새색시 볼따구니처럼 볼그름해지기를 몇 번 하다가 날이 밝아졌다. 굽이굽이 돌담을 돌아 훤해진 삼지내 마을 구경을 나선다. 빙그레 돌아가는 고샅길이 참으로 유혹적이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은 고샅길 저 뒤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쭉 뻗은 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포시 올라온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일까? 그 길 모퉁이 쯤에 옹기종기 시장 통이 나타나고 제법 늘어선 국밥집이 보인다. 맞아. 창평 국밥이 유명하댔지. 순대국밥·애기보국밥·콩나물국밥·모둠국밥.... 국밥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헌데 그렇지가 않다. 이렇게 예쁜 순대는 처음이다. 샛노란 콩나물 대가리가 웃음 짓는 동그랗고 통통하고 찰진 순대, 그것이 애기보에 한 번 더 싸인 것도 있다. 게다가 몇 년이나 되었을지 모를 묵은 지와 멸치젓갈. 눈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즐거운 웃음으로 한 번 더 먹게 되는 만족도 높은 국밥집에서 뜨끈하고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니 이것이 바로 행복한 밥상이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 마을, 삼지내 마을

이제 해설사 선생님을 따라 마을 구경을 나서본다. 슬로시티(Slow City)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 주신다. 그 시작은 2002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패스트푸드의 상징인 맥도날드가 들어오자 당시 시장이었던 파울로 사투르니니 씨는 속도 지향 사회를 반대하며 자연환경과 전통생활방식을 지키며 느리게 살자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저 제 속도를 지키며 살자는 것이다. 현재 지구촌의 슬로시티는 25개국 150개 마을, 이곳 담양의 창평 삼지내 마을은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 마을이다. 백제 시대에 형성된 삼지내 마을은 500여 년 전부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냈던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아낙들은 텃밭에서 호박잎이랑 고추를 따서 밥상을 차리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정자인 남극루에서 정담을 나눈다. 요즘은 임은실 씨가 1000여 종의 야생화로 효소를 만들고 최금옥 씨는 백야초, 곤드레, 민들레 등 36가지의 약초 장아찌로 약초밥상을 선보인다. 또 독일에서 귀화한 빈도림 씨는 꿀초 만드는 공방을 운영하니 이러한 창평 슬로시티의 명인은 26명이나 된다. 3.6km의 돌담길 사이사이에는 ‘미소집’ ‘돌탑을 사랑하는 집’ ‘나무를 사랑하는 집’ ‘정원이 이쁜 집’ 등 그 집의 특징을 딴 문패가 걸려있고 한집건너 한집에 ‘창평쌀엿’이라는 문구도 붙어있다. 무얼까? 태종 이방원의 장자는 양녕대군으로 10살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성격이 호방하고 여자를 좋아해 폐위 당했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왕위에 올라 세종이 되었다. 양녕은 자신의 비행을 충녕이 태종에게 고한 것으로 알고 원망하였는데 낙향한 양녕이 창평에 머무를 때 동행했던 궁녀들이 창평의 맑은 물과 좋은 쌀로 엿을 만들었다. 양녕은 이것을 궁으로 보냈으니 충녕에게 ‘엿 좀 먹으라는 것!’, 조선 최고의 풍류아란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허나 이 창평쌀엿은 이제 양녕대군 덕에 지역 특산물로 사랑받고 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사연이다.

전통, 그 속에 머물다

삼지내 마을의 민박집 어르신처럼 어릴 적 우리 할머니는 겨울이면 엿을 고으셨다. 밤새 불을 때면 뜨거워서 잠들 수가 없었으나 달콤한 엿가락이 떠올라 입에서는 절로 침이 흘렀었다. 그런 집에서 자고 일어나 엿 고는 것을 구경하고 엿치기를 하고 강아지와 놀다 돌담을 거닐며 따스한 겨울 햇살을 만끽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둑에선 엿기름을 말리고 어느 댁 어르신은 몽당비를 매신다. 내 할아버지도 저렇게 몽당비를 만들고 댑싸리를 길러 싸리비를 만드셨다. 이제는 민속촌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들려주다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담장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있다. 금계 고재선 가옥의 안이 궁금한가보다. 그 뒷모습이 사랑스럽다. 우리의 전통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여기 이렇게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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