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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리스벳, 제 2의 엘리자베스 여왕? 안동 퀸즈로드

2013-07-12

리스벳, 제 2의 엘리자베스 여왕? 안동 퀸즈로드

1999년 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다.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았다는 안동에서 산태극 물태극으로 물줄기가 돌아드는 하회마을의 충효당과 담연재를 들러보며 생일상을 받았다. 10년 후 이 길을 똑같이 따라가 보는 영국 소녀 리스벳의 눈에 비친 안동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인생의 커다란 숙제를 안고 온 리스벳은 그것을 풀 수 있을까?

한국을 방문한 금발의 아가씨

2009년 4월. 큰 키에 금발 머리카락을 날리는 늘씬한 아가씨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름은 리스벳. 오늘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리스벳은 10년 전 학생이었을 때부터 한국방문을 꿈꾸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쪼개 모아 오늘의 한국방문을 이룬 것이다. 그녀가 한국방문을 꿈꾼 것은 순전히 엘리자베스 여왕 때문이다. 영국 소녀 리스벳이 태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생일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TV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오면 ‘우리 리스벳은 여왕님과 생일이 같아, 여왕처럼 멋지게 살거야, 축하해’라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하여 리스벳은 전 세계를 누비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10년 전, 한국의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해 생일상을 받는 모습, 탈춤장단에 흥겨워 발장단을 맞추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여왕처럼 한국방문을 결심한 것이다. 그 순간 리스벳의 전화가 울렸다. “리스벳? 잘 도착했어? 날씨는 어때?” 리스벳의 남자친구 필립이었다. 사귄지 8년 되었고 얼마 전 청혼을 받았지만 아직 마음의 가닥이 정해지지 않아 한국 방문 후 답을 주기로 하고 떠나온 터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필립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항상 따뜻하게 감싸주고 아껴주는 필립을 자신도 사랑한다. 단지 인생에 있어 커다란 문제고 자신의 운명인지에 대한 확신이 조금 부족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던 안동 하회마을

국내선과 버스를 갈아타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도착했던 안동 하회마을로 들어섰다. 안동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239점의 지정 문화재가 자리한 ‘고(古)건축물들의 보고’라고 했다. 또 산과 물이 둘러싸인 자연이 빼어나다고도 했다. 리즈벳이 하회마을의 충효당에 도착한 것은 아침 햇살이 싱그런 11시쯤. 엘리자베스 여왕은 11시10분에 도착했었다. 당시에는 한국 국기와 유니온 잭을 든 2만여 명의 환영인파가 곳곳에 자리해 축제 분위기였다. 물론 지금은 환영인파가 없지만 대신 한적하고 상큼한 봄 햇살이 오래 전부터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었다. 충효당은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이라
는 사람의 집이다. 여왕은 충효당을 돌아보다 안채에서 여자들이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보았다. 김치는 한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전통음식이고 고추장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여왕은 방 안에 들어가 충효당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의 전통가옥인 한옥은 댓돌에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가는 구조라 여왕 역시 해외순방 중 처음으로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랐다. 리즈벳 역시 맨발로 마루에 올라섰다. 반들거리는 나뭇결을 딛는 느낌이 시원하고도 간지러웠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심었다는 충효당 마당의 구상나무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충효당을 나서 담연재로 가는 길에는 파릇파릇 봄소식을 알리는 야채들이 자라고 있었다. 10년 전 오늘,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농부가 있어 여왕이 이를 지켜보던 곳이다.


여왕도 흥겨워한 하회탈춤

담연재에서 엘리자베스여왕은 하회탈춤을 관람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못 보고 죽으면 염라대왕도 보고 오라며 다시 되돌려 보낸다’는 한국 전통공연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탈춤 공연을 보며 발장단을 맞추고 흥겨워했었다. 이곳에서 여왕은 73세의 생일상을 받고 아주 즐거워했다. 여왕은 1926년 런던에서 출생해 25세의 나이로 50여 개국의 식민지를 거느린 대영제국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지금도 54개국 영연방 국가 국민의 상징이며 여왕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간의 관심이 되는 막중한 자리에 앉아있다. 이날 생일상은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이자 한국음식 연구가인 조옥화씨가 임금님의 생일상을 만들 듯 대한민국의 농산물을 이용해 47가지를 차렸다. 울긋불긋 생일상엔 조선시대 궁중 연회에 쓰이던 꽃떡도 올랐으니 여왕은 “very
good, wonderful..”을 연발했다. 여왕의 생신 상 받는 모습을 보고자 담연재 옆 초가지붕에 많은 관광객이 올라가 초가지붕 일부가 망가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한다. 생일상을 받는 여왕은 웃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리스벳은 여왕의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생각했었다. 혹 영국에 혼자 있는 에딘버러 공이 떠올랐지 않았나 싶었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영화같다. 1939년 6월 그러니까 여왕이 13세 때 부왕인 조지 6세와 라트머스 해군 사관학교를 시찰하면서 사관생도였던 18세의 에든버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8년 후인 47년 결혼을 했다. 사실 자신과 필립도 만난 지 8년 정도 되었다. 물론 자신의 생일이 여왕과 같다고 하여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
리스벳은 다음 장소인 천등산 자락의 봉정사로 향했다. 일주문을 지나 한국의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극락전을 돌아보았다. 이어 여왕은 만세루에 올라 남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봉정사 산사를 둘러본 후 잠시 감회에 젖었다. 리즈벳 역시 만세루에 올랐다. 살살 부는 산사의 바람에 풍경소리가 이따금씩 들렸다. 기와가 얹힌 사찰의 지붕이 끊어질 뜻 맞물려가며 산줄기와 이어진다. 이것이 진정한 한국의 모습이리라. 봉정사를 돌아 나오는데 마침 ‘Happy Birthday, Lizabeth, I Love you, Phillip.'이라는 필립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리스벳은 씩 웃으며 한 줄 적고 가라는 스님의 말씀에 방명록을 적었다. ‘I miss you, Phillip. Lizabeth, from Korea" 순간 스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필립
이 누구고 리스벳이 누구냐고 물었다. 자신이 리스벳이고 남자친구가 필립이라는 말에 잠깐 기다리라더니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As I visit the Pongjong Temple in the peaceful mountains, I feel the beauty of a Korean spring day. April 21, 1999 -Her Majesty Queen Elizabeth II"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고 남긴 엘리자베스 여왕의 망명록이었다. 이것이 어떻다는 말이냐는 뜻으로 스님을 보았더니 그 다음 장을 넘겨주었다. 거기에는 ‘I miss you, Phillip. Lizabeth, from Korea"라고, 자기가 쓴 글귀와 똑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식적인 인사말을 남긴 후 개인적인 글귀를 하나 더 남겼다는 것이다. 그 때 뒷통수를 치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영국에서 떠날 때 남자
친구인 필립이 해준 말이었다. “그거 알아? 자기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갔던 길을 따라 간다고 했지.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 좀 찾아봤어. 신기한 것이 있더라구.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릴 때 집에서 리스벳으로 불렸대. 자기랑 똑같이 말이야. 그리고 또 있어. 에든버러 공 말이야, 원래 이름이 필립 마운트버튼이야. 필립.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내 이름이 필립이잖아, 엘리자베스 여왕과 에든버러 공, 그리고 리스벳과 필립, 이건 운명이라구, 운명!!!“ 순간 범종각에서 예불을 알리는 타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고 리즈벳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씻어내는 듯, 마음의 평안을 주는 듯 봉정사의 범종소리가 끝없이 아련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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