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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두대간의 속살을 만나는 30km의 미학, 협곡열차 V 트레인

2013-08-02

백두대간의 속살을 만나는 30km의 미학, 협곡열차 V 트레인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백두대간을 만나보자. 차로도 접근할 수 없는 산골 오지, 깎아지른 듯한 협곡 사이로 달리는 기차에서 추억을 갈무리해 보자. 분천역.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간이역이다. 그리 익숙지 않은 이름인 것을 보니 이용객이 많지 않거나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역시나 마을은 작고 한적하다. 세모지붕을 머리에 인 흰 역사는 양평의 구둔역과 비슷한 분위기,1956년에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니 역사가 그리 짧지만도 않다. 다시 보니 백두대간 오지에서 반백년을 지낸 외로운 간이역이다.

여름 추억쌓기에 좋은 기차 여행
여우천에서 흘러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고 하여 이름 붙은 분천역은 한 때 잘 나가던 역이었다. 50년 전, 금값보다 귀하다던 경북 울진과 봉화의 금강 송들이 거쳐 가던 곳으로 수백 명이 근무했으며 지나가도 개도 백환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수입목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해 사그라졌으니 질곡의 역사를 지낸 분천역이건만 마치 찰나의 시간을 보낸 듯 흰 구름 두둥실 떠 있는 파란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초연한 듯 평화롭고 한가해 보인다. 철로가 놓인 뒤쪽으로 돌아가본다. 그런데 이건?분천역의 뒤태에 반전이 있다! 흰 건물의 앞모습과 달리 통나무 몸채에 흰 창문, 창틀엔 작은 화분이 나란하고 체크무늬 커튼이 창틈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에 하늘거린다. 어디였더라? 빠아앙~~ 때마침 기차가 들어온다.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의 기관차 뒤에 진분홍 객차 3량이 달려있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V 트레인이다. 지난 4월, 산골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경상북도와 강원도 충청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손잡고 개통시킨 관광테마열차다. 중부내륙 3개도(강원, 충북, 경북도)를 하나(One)로 이으며 257.2km를 달리기에 O-트레인이라 불리는 중부내륙순환열차다. 영동선과 태백선, 중앙선을 원스톱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관광열차로 운행 1개월여 만에 이용객이 2만 명을 넘어섰으며 빙글빙글 돈다하여 ‘다람쥐 열차’라는 애칭을 얻고 있는 화제의 열차다. 그런데 이중 경북 봉화의 분천역에서부터 강원도 태백의 철암역까지 골 깊은 백두대간의 장엄한 협곡을 달리는 열차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이라 한다. V는 협곡의 모양이자 valley(협곡)의 약자이며 애칭은 ’아기백호‘다.

백두대간 협곡을 달린다, v - 트레인
“안녕하십니까? 백두대간 협곡열차 V 트레인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 그럼 기차를 타고 출발해보자. 기차 출발과 함께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이내 창밖으로 절경이 펼쳐진다. 출발한 지 3분 남짓, 오른쪽으로 낙동강 상류의 고요하게 흐르는 가호가 나타난다. 멋들어진 기암괴석 아래로 흐르는 강이 마치 잔잔한 호수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알프스의 빙하 녹은 물이 서서히 흘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분천역에 스위스 체르마트 역 표시가 있던 것과 스위스 국기가 날리던 것이 생각났다. 체르마트역은 알프스의 명산 마테호른을 오가는 ‘관광열차 빙하특급’의 시작점이 되는 역이다. 또 분천역은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출발하는 곳이라 지난 5월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우와~’ 갑자기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열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왔다. 천장에 형광 스티커로 별자리를 붙여놓아 은하수가 쏟아지듯 환상적인 분위기다. 그러고 보니 열차 역시 보통의 기차와는 그 모습이 다르다. 흰 바탕에 줄무늬가 있던 기관차는 백두대간의 역동적인 모습의 백호를 형상화했다. 승객들이 탑승하는 진분홍빛 객차 내부는 천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이 통유리로 되어 있다. 백두대간을 맘껏 감상하란 얘기다. 심지어 차량 맨 뒤 칸은 후면도 유리로 만들어 철로와 다리, 터널과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문 또한 개폐 형으로 한껏 열면 싱그런 바람과 초록의 물결, 향긋한 꽃 냄새가 여과 없이 들어온다. 뿐만이 아니라 객차 지붕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 이것으로 열차의 조명과 선풍기, 승강문 작동 장치 등에 사용하고 있다. 백두대간 청정 지역을 지나는 열차이니 만큼 탄소 배출을 줄이고자함이다. 해서 열차에는 에어컨이나 온풍기가 없다. 여름에는 천장에 달려있는 선풍이가 돌아가고 겨울이면 난방과 더불어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친환경 목탄 난로가 놓여 있다. 심지어 화장실도 없다. 분천역-양원역-승부역-철암역 구간은 27.7㎞로 그리 길지 않기에 과감히 화장실을 없앤 것이다. 두 손으로 잡고 올리는 창과 천장의 선풍기, 난로, 나무의자가 오래전 추억을 되살리는 복고풍임과 동시에 탄소 발생을 줄이는 미래형 친환경 열차다.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 작고 소담한 간이역
시원스레 뚫린 창을 통해 남한에서 가장 긴 강이라는 낙동강의 모습이 함께 달린다. 하지만 속도는 시속 30km. 300㎞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는 KTX의 빠름이 주지 못하는 넉넉함과 느림의 미학이 시속 30km에 있다. 속도에 묻혀 간과하던 것들이 하나씩하나씩 다가온다. 기차가 잠시 멈춰 선다. 양원역이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역’이라는 양원역의 대합실은 2평 남짓. 양원 역은 분천역과 승부역 사이 원곡마을에 위치한다. 서쪽은 경북 봉화군 원곡리, 동쪽은 경북 울진군 원곡리로 두 곳의 원곡리 사이에 있다 하여 ‘양원’이다.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이 개통되어 마을을 지났지만 역이 없던 원곡리 주민들은 마을을 관통하는 기차를 빤히 보면서도 승부역이나 분천역에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춘양면에 서는 장을 보고 올때는 원곡리를 지날 즈음 장 봐온 무거운 보따리를 열차 밖으로 던진 후 승부역에 내려 되짚어 걸어온 후 던져두었던 짐을 되찾아갔다고 한다. 던진 물건은 수풀에 찔려 죄 쏟아지고, 떡을 하려던 쌀가루는 터져서 낙동강에 흘러가기도 했다한다. 그러던 88년 마을 소년이 쓴 눈물의 탄원서가 대통령에게 배달되어 개통 33년 만에 양원역이 생기니 마을 사람들이 누구랄 것 없이 괭이며 지게를 들고 나와 승강장, 대합실, 화장실을 만들었고 기차가 서던 날엔 사람도 산도 강줄기도 감격해 울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하늘도 땅도 세평이라는 오지중의 오지 승부역이다. 이렇게 백두대간 열차는 자동차는 감히 접근조차 힘든 오지를 지난다. 더구나 간이역이 있어도 그저 스쳐가기에 발을 딪지 못하던 백두대간의 깊은 곳에 멈춰 선다. 깎아지른 협곡과 굽이치는 낙동강과 때 묻지 않은 비경을 자아내는 곳을 달리며 백두대간의 속살을 만날 수 있으니 이것이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가 반가운 이유다.

기차의 변신은 무죄
광복 후 태백산맥 깊숙이 묻힌 석탄을 실어 나르느라 산간오지를 헤집어가며 만들었던 석탄열차는 이렇게 관광열차로 다시 태어났다. 차창 밖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야성적인 물살이 굽이치는 계곡을 지난다. 오로지 기차에만 허락된 정취와 낙동강 물줄기는 협곡열차와 나란히 달리며 속 깊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지그시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댄다. ‘쿠궁~쿠궁~’, 기차 특유의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온다. 기차 바퀴가 선로 이음매를 지나는 규칙적인 소리다. 기차 속도가 빨라지고 선로가 직선화되면서 이제는 거의 사라진, 오래된 철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경쾌한 스타카토 리듬처럼 다가왔다 멀어지는 터널과 나무와 강줄기가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올 여름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두고두고 꺼내고픈 추억 하나가 더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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