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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해바닷가에서 ‘울루와뚜’를 만나다, 하슬라 아트 월드

2013-08-09

동해바닷가에서 ‘울루와뚜’를 만나다, 하슬라 아트 월드
푸르름에 눈에 베일 것 같은 동해바다가 한 없이 출렁이다.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철책선 안쪽 모래사장은 조물주의 영역이며 기찻길과 찻길 건너편 야산엔 청록의 세상이 싱그럽다. 그렇게 7번 국도를 달려 조선의 임금님이 살던 경복궁의 정동쪽 나루터, 정동진에 닿는다. 그런데 저건 뭘까? 눈길 닿는 그 끝자락에 알록달록 구조물이 눈에 띤다. 묘하다. 미처 마음을 정하기도 전에 손이란 놈이 먼저 핸들을 꺾어 버린다. 커피향이 유혹하는 널찍한 나무테크에서 한 숨 돌리노라니 파란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마음까지 파랗게 물들어 버린다. 여기는 어디인가?

소나무 숲속에 물이 흐르는 길
더위도 식힐 겸 산책로를 따라 나선다. 이름은 성성활엽길. 야생 짐승이 다니는 길이었는데 예술작품이 놓이면서 이제는 사람도 다니는 길이 되었다. 예술작품이라곤 하지만 미술관에 있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발밑에 누워있는 돌덩어리에 나비와 장수풍뎅이가 그려져 굴러다니고 소나무 숲 사이로 사람모양의 이끼 덩어리가 어울렁더울렁 서 있다. ‘찌르륵 찌르륵’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고 ‘곤충언덕'에 오르면 메뚜기, 무당벌레, 거미들이 바다로 뛰어들 듯 풀밭을 달린다. 십이지신상 돌멩이가 둘러싼 웅덩이 가운데에는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정동진이라서인지 커다란 해시계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해시계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말이다. 따라 들어가니 양철 터널을 지나 하늘 전망대 쪽으로 나온다. 이렇게 기발한 생각은 도대체 누가 했을까? 목이 꺾일 듯 올려보니 눈길 닿는 그 곳에 ‘하늘을 나는 자전거’가 공중에 떠있다.

바다의 신 데위다누를 모시던 울루와뚜 사원
모든 것이 기발하다. 그러면서도 자연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급작스레 앞쪽이 탁 트이면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서있는 바다 정원이 펼쳐진다. 육감적인 젖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비너스의 자태는 섹시 코드가 아닌 다산과 풍요다. 아하! 드디어 생각이 났다.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를 듯, 재채기가 나올 듯 간질간질 답답했는데 탁 트인 동해 바다와 육감적인 비너스 상을 보며 생각이 났다. 그것은 책상에 붙어 있던 사진 속 울루와뚜였다. 발리섬 남쪽 끝 깎아지른 듯한 80여m 울루와뚜 절벽은 바다의 여신 데위다누(Dewi Danu)의 배가 변한 것이라 한다. 10세기 경 바다의 여신을 모시기 위해 고승 우푸쿠투란이 울루와뚜절벽사원(Pura Luhur Uluwatu)을 세웠다. 건축양식도 멋지지만 주변 경관과의 조화가 일품이다. 낮에는 탁 트인 인도양이 끝없으며 해질녘에는 다채로운 빛깔로 물드는 환상적인 경치가 장관이고, 절벽 길을 산책하는 것도 즐거우나 야생원숭이들이 관광객의 소지품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람과 신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울루와뚜를 생각하다보니 소똥 갤러리가 나타난다. 말 그대로 소똥을 재료로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정에 매달린 소똥덩어리들은 대관령의 청정 풀들이 소의 먹이가 되었다가 배출된 것을 모아 1~2년의 숙성과정을 거쳐 작품재료가 되었다. 자세히 보면 색이 각기 다른데 흰색과 푸른색 등 곰팡이 때문이며 여름풀을 먹은 소와 겨울 건초를 먹은 소의 똥은 그 색감과 명암이 다르다. 우주의 순환과 배설,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아래에는 돌 갤러리가 있다. 자동차만한 돌이 하늘에 매달려 있고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 이를 올려다본다.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발리도 그러했다. ‘신들의 섬’이라 칭하는데 그만큼 그들에게는 신이 많다. 산에도 들에도 신이 있으며 집안물건은 물론이고 자동차나 컴퓨터에도 신이 존재한다. 해서 아침저녁으로 예쁜 꽃장식 짜망(Camang)을 올리며 기도하고 2만여 개의 사원을 보살피며 제사가 있으면 회사에도 나가지 않는다. 현대문명은 언제부턴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발리사람들은 ‘Tri Hita Karana’, 신과 자연환경과 지역사회 즉 인간이 서로 존중해야 평화가 온다고, 인간은 신들과 신들이 깃든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우주 속 인간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발리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는데 오늘 이곳에서 다시금 같은 느낌을 받았다.

10세기의 발리와 21세기 정동진의 데자뷰
문득 궁금해졌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이곳을 만들었는지 말이다. 그들은 부부라 했다. 강릉바다와 대관령의 정기를 품은 남자와 경주바다와 토함산을 가슴에 안은 여자가 해 뜨는 정동진 바닷가 절벽에 ‘하슬라’를 만들었다. 하슬라는 고구려 때 불리던 강릉의 옛 이름이다. 그리고 ‘하슬라의 꿈’은 자연과 예술과 사람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것이라 했다. 소나무 숲 속 성성활엽길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숲 속으로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하려 했고 삼만 평 규모의 야외조각공원은 쇠나 돌은 물론, 대형 해시계처럼 대지의 지형이나 공간 자체를 재료로 삼아 땅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자 현재진행형인 ‘대지예술'을 표방했다. 호텔도 마찬가지다. 경주 포석정처럼 객실 안으로 물이 졸졸 흐르고 욕조에 누우면 수평선과 눈을 맞추며 바다가 들어온다. 침대는 나무를 푹 파서 그것으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 누구라도 아늑함을 느끼도록 자궁(子宮) 속처럼 만들었으니 태초의 자연 속에서 쉬라는 뜻이다.10세기, 울루와뚜 절벽에 바다의 여신을 모시기 위해 고승(高僧)이 절벽 사원을 만들었듯,21세기 정동진 바닷가 야산에 대지의 신을 위해 조각가 부부가 ’하슬라 아트 월드‘를 만들었다. 울루와뚜의 석양이 멋지듯 하슬라의 일출이 장관이고 울루와뚜의 원숭이가 소지품을 빼앗듯 하슬라의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리고 우리는 태초의 자연과 바다의 품에 안겨 소똥과 돌과 메뚜기를 경외한다. 한 바퀴 돌고 오니 다시 제자리다. 바다, 하늘, 수평선, 일출, 달뜨는 풍경을 볼 수 있다하여 이름 붙은 '항상' 바다카페다. 나무데크 맞은편에서 황금빛이 나는 청동옷을 입고 쓰러질 듯 달려오는 이가 있다. ‘포세이돈의 귀환‘이다. 그 뒤로 그 옛날 하슬라 바다에 어화가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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