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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련한 향수와 먼지의 향연,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

2013-10-11

아련한 향수와 먼지의 향연,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
한때 이외수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이외수를 처음 만난 건 중 고등학교 때로 ‘말더듬이의 겨울수첩’이란 작품을 통해서다. 안개 자욱한 춘천 거리와 춘천시청, 로터리 등과 그의 생각이잘 표현되었고 벽보판에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똥바가지를 퍼주고 싶다는 글귀도 인상적이었다. 감수성과 반발심이 극미했던 사춘기인지라 그 때부터 춘천은 살아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던 곳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내 인생의 일부분을 춘천에서 보낼 기회가 생겼다. 기뻐하며 이외수가 보이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명동 닭갈비 골목을 지나 헌책방에서 시중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이외수의 지난 책을 사곤 했다. 일주일에 두서너 번은 들렸으니 헌책방 주인아저씨는 내가 오길 기다리며 이외수의 책은 물론 시드니 셀던의 책과 새책이나 다름없는 대하소설, 관심 있어 하는 수필집들을 챙겨놓고 기다려 주셨다. 그래서 맘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기다리는 헌책방 가는 길은 너무도 즐거웠다. 정가의 4분의 1이면 한권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1~2만원만 들고 가도 읽고 싶은 책은 한 아름 들고 올 수 있었다.

헌책방에 얽힌 아릿한 추억
내게 책방이란 그리고 헌책방이란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말을 걸어오고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 하나 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아련한 향수와 먼지의 향연 속에 즐거움이 가득찬 보물 상자 같은 곳이니 부산에 이 같은 보물 상자, 아니 보물 창고가 연이은 거리가 있다.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 사거리 건너 보수동쪽으로 난 사선 방향의 좁은 골목길이 그곳으로 입구에는 부산의 명소, 보수동 책방골목이라 쓰인 표지판이 있으며 앞으로 보이는 동헌서점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된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크고 작은 책방들이 어깨를 결고 있다. 서너 평 남짓한 헌책방부터 제법 큰 상점까지, 늘어선 책방에는 책이 산처럼 쌓여있다. 작은 책방의 경우에는 책들을 쌓아놓을 공간이 모자라 천장까지 치 쌓아 놓으니 마치 책들이 암벽등반(?)이라도 하듯 벽을 타고 천장으로 향한다. 그것도 두 세 겹씩 겹쳐있으니 사다리는 책방 주인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이로도 모자라 가게 밖으로까지 쏟아져 나와 대로변에도 책들이 산을 이룬다. 이렇게 많은 책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 내오는 책방 주인아저씨들은 정말로 신통방통하다.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책들
책들은 그 범위가 방대하고 다양하다. 오래된 잡지부터 대학교재, 참고서, 법전, 사전류, 기독교서적, 미술서적, 디자인서적, 화집, 수입 잡지, 교과서, 생활영어교제, 학습 비디오테이프 등 없는 것이 없다. 성할 때는 70여 집이었으나 지금은 50여 집, 현재 가장 오래 된 서점은 대륙서점(051-256-8965)이며 제일 연장자이자 보수동의 산증인이신 한동점 어르신은 정오쯤에 서점 문을 열고 고서를 진열하곤 한다. 가게에는 각종 고서와 한의서, 침술서등이 많고, 역술서 또한 부산에서 제일 이라한다.

한국전쟁 당시부터 시작된 보수동 책방의 역사
이곳에 책방골목이 형성된 건 꽤 오랜 역사다. 6·25전쟁이 발발해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 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 씨 부부(구 보문서점)가 보수동의 입구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헌 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을 내다판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당시 부산에 있던 학교는 물론 피난 온 학교까지 보수동 뒷산에서 노천교 실이나 천막교실로 운행되어 있던 차라 보수동 골목길은 자연히 통학로로 이용되며 학생들 로 붐볐으니 장사는 꽤 잘된 편이다. 또한 출판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던 터라 책이 귀해 생활이 어려운 피난민과 학생, 지식인들은 피난 오면서도 가져왔던 귀중한 책을 내다 팔기도 하고 저당 잡히기도 하였다. 하여 학기가 시작될 때면 책을 사고파는 광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주머니 사정 넉넉지 않는 학생들과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을 원하는 교수님들이 단골손님이었으니 혹간은 소중히 보관하던 값진 고서가 나와 수집가들에게 화제가 되곤 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곳도 있으니 이곳은 만화전문 서적인 국제 서적이다. 부산 경남 만화 총판점으로 2층으로 이어지는 넓은 매장에는 만화 무협지가 산처럼 쌓여있으니 젊은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신이난다. 지훈서점은 초 중고 참고서를 취급하고 단골서점은 아동 도서를 취급하니 유치원생부터 어르신가지 고루 만족시킨다 할 수 있다. 책방 골목의 마지막쯤에는 '고서점'이 있다. 가업을 물려 받아 고서를 수집하고 한국학에 관련된 자료뿐 아니라 민속자료 등을 모으고 전파하는 곳이다. 젊은 주인장이 넉넉하게 인상이 좋다. 2대에 걸쳐 내려오는 낡은 전축과 다이얼 전화기에 세월이 앉아있다. 옛사람들의 손때가 절절히 묻은 고서와 헌책 사이에서 낡은 컴퓨터는 바다위의 한 점 섬처럼 자리하고 있어 그 광경이 자못 인상적이다.

책방거리의 주전부리 코너
책방골목의 중간쯤에는 책방 거리를 찾은 사람들을 위한 주전부리 코너도 있다.길거리 분식점이 그곳으로 만두가 1인분에 10개 2천원이고 오뎅이 3백 원, 도너스가 4개에 천원이다. 즉석에서 튀겨주는 따끈하고 고소한 주전부리가 좋다. 또 책방 골목에는 길 다방도 있으니 커피, 녹차, 쑥차, 생강차, 레몬 홍차, 인삼차, 마차 등 갖가지 마실 거리가 있다. 넉넉하고 오지랍(?) 넓은 할매는 마음에 들면 커피며 녹차며 한잔씩 거져 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곳 책방골목의 매력은 역시 저렴한 가격이다. 보통 몇 만원 씩 하는 대학교재는 반값이고 소설류는 30% 안팎, 아동전집류는 주인과의 협상(?)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신간서적도 20~ 3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싸게 살 수 있으며, 헌 책인 경우 책의 상태나 흥정에 따라 값이 매겨진다. 또 다른 매력은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나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한때 서점에서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그런 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명품이라고나 할까? 사연(?)이라고나 할까. 숨은 듯 드러나는 절판된 서적이나 희귀 고서들, 꼭 한번 읽고 싶었던 책을 구해 품에 넣는 순간은 보물을 찾아낸 느낌이다. 가끔씩 누군가가 적어놓은 글귀 하나가 또는 밑줄 쳐 놓은 구절이 내 맘과 너무나 똑 같고 절절히 와 닿을 때의 기분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누군가의 손 안에 들려 책장을 펼쳐 보였을 갈피마다에, 손때 묻은 지나간 시간의 자취도 묻어나 정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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