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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떡살, 절구, 은비녀가 전하는 사연, 답십리 고미술상가

2013-12-06

떡살, 절구, 은비녀가 전하는 사연, 답십리 고미술상가
나는 오동나무다. 얘기 씨가 태어났을 때에 심어졌으니 내 나이는 열아홉. 산 좋고 물 맑은 강원도 영월의 무릉리 이대감집 뒤뜰에 서있다. 얘기 씨는 자기와 동갑내기 친구라며 나를 유독 예뻐한다. 자기 얼굴만큼이나 큰 나의 잎을 따고 동글동글 열매를 따서 소꿉놀이를 한다. 부엌살림을 담당하는 월선 어멈은 미역국을 먹고 체하면 내 껍질을 다려먹었으며, 뒷간에 구더기가 난다며 이를 없애기 위해 내 잎을 뚝 따서 덮기도 한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내 그늘에서 평상을 펴고 쉬었으니 나는 이들과 더불어 행복하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나를 보고는 ‘음 오동나무가 이렇게 컸으니 이집에 과년한 여식이 있는 모양이로군.’하더니 얘기 씨에게 혼담이 오갔다. 날이 잡히니 이대감은 삼용이를 시켜 나를 베라한다. 이리저리 쪼개지고 끼워지고... 동백기름을 먹여 나뭇결을 살려내고 생옻칠을 하니... 나는 겸손한 윤기가 흐르는 ‘애기장’이 되었다. 평생 쓰고 또 대물림되는 애기장은 반가의 여식이 시집갈 때 가져가는 작은 장이다. 태어날 아기 옷을 미리 만들어 넣어가니 상민이나 노비들은 그림의 떡. 이제 주인 애기 씨를 따라 이집을 떠나게 된다. 반들반들 윤이 나게 보살피던 주인 애기 씨를 지나 몇 사람의 손길을 거치다가 결국에는 뉘 집인지 모를 곳의 헛간에서 온갖 먼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전쟁 통에 죽을 뻔도 하다가 어찌어찌해서 나를 알아주는 이의 손에 들어왔으니 이곳은 서울 답십리의 고미술 상가. 경고당이다. 내 옆으로는 나만큼의 세월과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있으니 놋주발, 비녀, 오래된 서책이다 이제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노라니 지난 온 세월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여행길
애기 장이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가만가만 들리는 이곳은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 5동. 흔히들 고미술상가라 부르는 곳이다. 겉보기엔 여느 변두리 상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건물이지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곧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세계가 펼쳐진다. 생활용품, 고서화, 도자기, 고가구 등을 전시해놓은 상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소품 전통 박물관'이다. 인사동이 주로 고가의 고미술품을 판다면 이곳은 석물과 고가구 그리고 생활용품이 주를 이룬다. 가격은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천차만별. 5천 원짜리 등잔, 2만 원 짜리 떡살, 2백만 원짜리 항아리, 20만 원짜리 문짝, 6천 원짜리 바늘쌈지가 각기 사연을 담고 있으니 그 설명을 듣노라면 정신없이 과거로 빠져든다. 대부분의 점포는 15년에서 20년 정도 되었다. 청계천에 자리하고 있다가 청계천지역이 개발되면서 이곳 답십리나 장안평으로 이사를 왔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답십리 역에서 3분 거리인 삼희 상가의 2동 5동 6동의 세 건물. 다시 이곳에서 10분 거리인 송화 빌딩의 두 동에 장안편 고미술 상가가 있으니 두 곳을 합하면 150여 곳. 이곳에서 ‘우리의 옛것’을 취급한다. 예전에는 부동산으로 졸부가 된 사람들과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았기에 80년대가 가장 호황이었다. 지금은 카페 인테리어를 하거나 한식집을 꾸미고 연극영화의 소품으로 또 아파트 인테리어를 위해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물론 예전보다는 경기가 많이 안 좋지만 말이다.

우리의 전통을 찾아 보내는 의미있는 시간
20년 가까이 장안평에서 장사를 해온 진보당은 석물 전문점, 돌로 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데 요즘은 물확을 많이들 찾는다. 물확은 물을 담아서 부레 옥잠을 키우거나 작은 물레방아 혹은 인공분수를 곁들이고 금붕어도 넣어둘 수 있어 실내정원을 꾸미기에 좋다. 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서화 전문점인 송완당을 찾는다. 민화(民畵)가 많이 보이는데 글자를 그림처럼 쓴 문자도, 선비들의 방안 책상과 서책 등을 그린 책거리, 농사짓는 아낙과 일하는 농촌 사람들을 그린 농경도, 경치 좋은 산과 들, 호수를 그린 풍경화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모습을 그린 풍속화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70~80년 된 그림로 조선시대의 까치, 호랑이 그림과 불교에서 사용하는 탱화 그리고 1천만 원을 호가하는 용의 그림도 있다. 고미술 상가의 물건들은 희소가치와 보존정도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엿장수 가위로부터 놋그릇, 함지박, 떡살, 절구, 뒤주, 화로, 서탁, 소반, 애기장, 화초장 등의 전통 생활용품으로부터 전적(고문서), 토기와 도기, 거문고, 민화, 석물, 철물(금속공예) 등이 뒤엉켜 있어 몇천원하는 바늘 쌈지부터 기백만원을 호가하는 이조백자가 바로 옆자리에 있지만 그 어느 것을 들어도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묻어있기는 매 일반이다. 조선시대의 정일품부터 정구품까지의 관복, 혼례복, 춤복, 상례복이 있으며 모자로는 관모, 초립동, 패랭이, 갓 뿐 아니라 임금님이 돌아가셨을 때 쓰는 백사모도 있다. 고려인의 남성과 여성의 일상복도 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물건들
어머님들이 몸에 지니던 '호톱'이란 것도 있다. 호랑이의 발톱이란 뜻인데 진짜 호랑이의 발톱을 백동이나 백금으로 싸고 윗부분에는 정교한 조각을 달아 장식을 해서 이를 몸에 지녔다. 호랑이가 자신을 지켜주며 이로 인해 복이 온다고 믿었던 물건으로 조선시대의 상태 좋은 것이 25만원 정도 한다. 인경이란 것도 있다. 방울의 일종으로 맑은 소리가 나기에 이 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이밖에도 화로의 일종으로 새색시가 가마타고 시집갈 때 가마 속에 넣어 주던 교로가 있다. 요즘의 아이들 중 화로를 아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삼단같이 기름기가 졸졸 흐르는 딸자식의 머리를 빚어주던 참빗. 한 때 초등학교에 이가 많이 돌때는 이것으로 빚어 잡아내기에 참빚을 찾느라 야단이었다고. 이곳 장안평에 오면 우리 선조들에 대한 자긍심과 존경심이 생기고 저도 모르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곳 점포주인들 중에도 그저 관심으로 시작해 몇십년을 우리의 옛 물건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이제는 떠날 수 없는 숨결을 느낀다고.. 어린이 손을 잡고 혹은 연인 손을 잡고 한번
쯤 가볼만한 곳이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찾아가기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2번 출구를 나와 3분정도 걸어가면 길게 늘어선 주상복합건물 3동이 있다. 벽에는 2동, 5동, 6동이라는 숫자가 크게 쓰여져 있는데 답십리 고미술상가 간판을 찾으면 된다.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장안평이 있으며 대부분의 점포는 오전 9시에서 오후 7시까지 문을 열고 첫째, 셋째 일요일은 휴무. 특히 고가품을 거래할 경우에는 진품여부에 대해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협회에서 감정서를 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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