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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춘천으로 가는 김유정 문학기행

2014-03-14

춘천으로 가는 김유정 문학기행
1937년 3월 29일,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스물아홉이었다. 급하게 떠나버린 그 사람은 바로 소설가 김유정이다. 그는 소설30편, 수필12편, 편지·일기6편, 번역소설 2편을 남겼다. 짧은 문단 활동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대 소설의 역사에 주목할 만한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그의 소설은 1930년대 사회 문제들을 자신만의 해학적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평가하지 않고 유머와 아이러니, 해학과 풍자로 그려냈다.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글의 이면에 깊은 근심과 걱정을 담고 있는 것이 김유정 소설의 특징이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던 삶

그는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6천석 이상을 추수하는 춘천의 명가였으며, 부친 또한 1천석 이상과 서울에 1백여 칸짜리 살림집을 마련할 정도로 부호 집안이었다. 그러나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모성애 결핍으로 한때 말을 더듬기도 한다. 2년 후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며 그의 삶에 어두움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청년시절 늑막염으로 고생하던 그는 고향에 있는 형에게 생활비와 병원비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주색잡기에 빠져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던 형은 그를 외면하고 만다. 형을 상대로 재산분할청구 소송까지 제기 했었지만 형제간의 정은 돌이킬 수 없이 깨져버리고 내쳐진다. 약값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던 유정은 더욱 허약해져 치질과 폐병까지 얻게 되었다. 밤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벽에 기대고 앉아 필사적으로 소설에 매진한다. 글을 쓰는 것이 어둡게 드리워진 운명을 떨쳐버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병든 몸을 이끌고 셋방과 누이의 집을 전전하며 소설 쓰는 일 외에도 돈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아 매달렸다.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중략……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50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중략……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기다리마.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그의 친구 안회남에게 쓴 편지에서 그의 절박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벗어나고 싶었다. 병마와 가난을 떨쳐내고 싶었다. 하지만 3월 18일 친구에게 쓴 편지가 그의 마지막 글이 되었다. 쓸쓸하고 짧았던 그의 삶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미친 사랑의 노래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잃은 유정은 허전한 마음을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달래곤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에게 지금 단 하나의 원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 싶사외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한껏 울어보고 싶사외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 이미 없노니 어찌하오리까.……」 미완성 소설 ‘생의 반려’ 중에서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은 연상의 여인에 대한 짝사랑으로 이어진다.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어머니를 닮은 여인 박녹주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그때부터 2년여 동안 유정의 광적인 사랑은 지속된다. 박녹주는 명월관 기생이자 판소리 명창이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머리를 올려준 후원자는 당대의 거물급 인사였다고 하니 4살 연하의 김유정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박녹주에게 무시당한 그는 혈서를 써서 보내며 열렬한 구애를 펼친다. 그러나 온갖 협박과 애원어린 호소에도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박녹주에 빠져버린 그는 학교를 거의 가지 못했다. 결국 입학 후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만다. 유정의 두 번째 사랑은 그와 같이 공동 작업을 했던 박봉자다. 하지만 그 사랑 역시 짝사랑이었다. 이화여전에 다녔던 박봉자는 유정의 광적인 구애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두 번의 사랑은 슬픈 사랑으로 막을 내린다. 그의 사랑은 ‘미친 사랑의 노래’라는 작품(2010年)으로 다시 태어나 공연되기도 했다.

영원히 함께한 친구

김유정은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면서 더욱 창작활동에 힘을 싣기 시작한다. 유정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와 시대적 현실, 사랑에 대한 상처 그리고 병든 몸 등의 상황에서 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이었을 것이다. 유정은 ‘구인회’ 시절 자신과 영원히 함께할 동지를 만나게 된다. 바로 소설가이며 시인인 이상이다. 두 사람은 서로 잘 통하고 집안 형편도 비슷했다. 더군다나 폐결핵을 앓고 있는 상황까지 같아서 둘은 친해진다.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모의를 하곤 했다. 1937년 봄, 유정이 세상을 떠나고 열아흐레가 지난 4월 17일 이상 또한 27세의 나이로 유정을 따라 떠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영원히 함께 하게 되었다.

김유정의 고향, 소설속의 ‘실레마을’

그의 고향을 지나는 경춘선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에 개통되었다. 개통 후 65년 동안 ‘신남역’으로 불리던 역명은 2004년 12월 1일부로 김유정역으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그의 문학적 업적을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나타내며 남다른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50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중에서

실연과 학교 제적이라는 아픔을 안고 귀향하여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 등 농촌계몽활동을 벌인다. 2년간의 고향생활이 그의 문학작품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그는 농촌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데 몰두하게 된다. 그해 ‘산골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시작으로 김유정의 문학 활동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30편의 소설 가운데 ‘봄․봄’, ‘산골나그네’, ‘동백꽃’ ‘만무방’ ‘소낙비’ 등 12편의 작품이 그의 고향 실레마을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의 삶과 한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재 실레마을에는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기 위한 김유정문학촌이 세워져 있지만 실레마을 전체가 김유정문학촌이라 할 수 있다. 김유정문학촌을 중심으로 소설 속 실제 지명을 찾아갈 수 있는 ‘실레이야기길’과 ‘금병산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금병산자락 아래 잣나무 숲은 ‘동백꽃’의 배경이다. 기념전시관의 맞은편으로는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야학 터가 있으며, ‘봄․봄’의 봉필 영감이 살았던 마름집이 있다. 김유정이 코다리찌개로 술을 마시던 ‘솥’의 주막터도 남아있고, ‘산골나그네’의 들병이가 남편을 몰래 숨겨놓았던 물레방앗간 터와 주막 등이 실레마을 이야기 길을 따라 이곳저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의 동쪽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금병산에는 ‘봄봄길’, ‘동백꽃길’, ‘만무방길’, ‘금따는 콩밭길’등 김유정의 작품 제목을 딴 등산로가 산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소설 속으로 이끈다. 시골 향기와 문학의 향기에 빠져 걷다보면 스물아홉의 김유정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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