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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자유로운 그 빛을 향해서, 아름다운 등대여행

2014-08-29

자유로운 그 빛을 향해서, 아름다운 등대여행
해가 질 무렵의 섬은 참으로 외롭다. 창밖을 두드리던 바람소리가 잦아들고 어디선가 불어온 소나무 향기가 사위를 감쌌지만, 아래쪽 숙소에서 밥짓는 냄새가 보다 달짝지근하게 우리들의 감각을 일깨운다. 밤에는 푸르스름한 저녁과 하늘을 가득메운 별들이 잠을 청한다. 이곳이 어딜까? 감각조차 무뎌버리고 시간조차 잊고 지내는 이 바다 한가운데 특별한 세상.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 하나가 여행자들의 마음을 미혹시킨다. 뱃사람이라면 길잡이 삼아 어렴풋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겠지만 우리같은 방랑자들은 그 빛을 향해 다가가는 나방처럼 따뜻함과 안온함을 찾아 지쳐버린 날개를 묻듯
등대로 걸음을 옮겨 짐을 푼다. 외딴 섬, 외딴 항구 끄트머리에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밤만 되면 빛을 뿜는 그이지만 막사 가까이 다가가서 그 실체를 확인해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등대 이야기이다.

시대에 맞춰 변해가는 등대의 모습

등대. 어느 바다, 어느 섬을 가더라도 제일 먼저 도착했음을 알려 주는 곳이다. 하지만 이젠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 등대의 정식 명칭은 ‘항로표지 관리소’. 달랑 등탑 하나와 음파를 전하는 혼 하나가 전부였던 재래식 등대가 디지털 방식을 도입해 서 인공위성과 송수신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선박의 위치나 앞으로의 항로를 알 수 있게 하는 DGPS 송수신탑을 갖추고 또 Radio Beacon을 사용한 무선 항로 표지관리를 하게 되어 단순히 빛을 발하는 것 이상의 항로표지관리소로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그 복잡한 항로표지관리에 대해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등대가 현대화 되어가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등대가 처음 선을 보인 때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1백년 정도 되었다. 새로운 방식의 항로표지를 도입하면서 점차 새로운 스타일로 바뀌어가고 있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조차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젠 차츰 우리곁에서 옛모습의 등대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특히, 일반인들에게 숙소로 개방하는 정책을 채택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등대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옛 등대에는 저마다 사연이 남아있지만 새로운 등대의 출현으로 나름대로 물갈이가 되고 있고, 등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들은 산업화와 관광정책들의 혼재로 그 빛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등대는 여전히 신비로운 자태로 우리들의 영혼을 두드린다. 만약, 누군가로부터의 시선과 간섭, 그리고 관심조차 멀어지길 원한다면, 그래서 그 어느때보다도 특별한 여름 휴가를 원한다면 주저없이 이 여름이 다 가기전에 등대로 걸음을 옮겨보자.

우리가 등대를 만날 수 있는 곳들

등대에는 유인등대와 무인등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일반인들에게 개방을 허락한 곳은 전부 10곳. 그나마 안전도와 재보수 등을 이유로 몇군데는 그나마 바깥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우선, 대표적인 장소들을 짚어보자면, 경남 통영의 소매물도 등대, 전남 신안의 홍도 등대, 전남 여수의 거문도등대, 제주도 산지등대,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등대 등등을 꼽아볼 수 있다. 하지만 찾아가는 길이 험한 만큼 막상 다가가서 만나는 등대의 모습들은 정말 기대이상이다. 자연과 어울려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다.

그곳에 머무르는 각별한 즐거움

낯선 그림에서나 문득문득 다가오던 등대의 실존이 머무를 수 있는 숙박장소로 보다 현실감있게 다가온 것은 올해 해양수산부가 전국의 유인등대들 중 10개를 개방하기로 결정하면서 부터이다. 제일 편리하게 다가설 수 있는 등대는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 제주도의 산지등대이다. 항공편으로 한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이곳은 제주 공항에서 제주 여객터미널이 있는 탑동을 찾아가면 된다. 그곳에서 사라봉 언덕을 바라보면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하얀 등대 두 개를 만난다. 키 낮은 작은 등대와 높이 솟아올라 보란듯이 바다를 살펴보고 있는 키 높은 등대가 바로 산지등대이다. 제주의 야경을 완성시키는 제주항의 불빛들과 더불어 하나의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예전에 사용되던 등탑을 그대로 두고 바로 옆자리에 새로운 등탑을 세운 까닭은 84년간 사용하던 시설이 너무 낡았기 때문이라고. 1916년 10월에 처음으로 불을 밝혔던 작은 등대는 1999년 12월에야 자신의 임무를 새로운 등대로 넘겨주고 지금은 그 역사적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하나의 기념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지등대는 사라봉 언덕에 자리하고있어 바로 옆 별도봉을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다를 향해 돌출된 별도봉 허리를 따라 돌아가고 있는 별도봉 산책로는 바다와 산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풍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직각으로 끊어진 벼랑, 거친 느낌의 바위들이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산책로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제주의 오름과 바다를 모두 느껴볼 수 있다.

통영의 소매물도 등대

소매물도 등대는 통영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두시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다. 작은 섬 하나에 자리잡고 있어 섬 이름조차 등대섬이다. 등대가 원래 그곳에 있었던 섬의 주인인 것처럼 섬 하나에 등대 하나. 벌써 100년이 되도록 이 작은 등대섬의 인구는 언제나 등대를 지키는 사람들의 수와 같다. 섬 하나, 등대 하나, 그곳에 사람 몇이 섬을 이루는 전부인 셈이다. 1917년 8월에 무인등대로 처음 불을 밝히기 시작한 이 등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1940년 11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섬을 지키고 있다. 소매물도 자체도 작은 섬이어서 섬 한 바퀴를 돌아보는 데 채 한시간이 안 걸리지만 이 등대섬을 섬이라고 하기보다는 좀 큰 바위가 바다를 향해 떨어져 나와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듯 싶다. 등대섬과 소매물도 사이엔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열리는데, 그래서 그 나름의 애틋한 사연도 간직하고 있다. 하늘이 남매의 사랑을 허락지 않았던 슬픈 전설이 그것이다. 서로 사랑하던 남매를 하늘이 벌주기 위해 그렇게 두 개의 섬으로 별리를 만들게 했고 하루에 두 번 열리는 몽돌 물길을 통해 사람들이 오가도록 허락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물때를 잘 맞춰야 이 작은 섬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착장에서 배를 빌려 타고 들어가야 한다. 바위섬인 소매물도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 이 바다위 유람은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부딪히면서 만들어진 갯바위들과 절벽사이로 뚫어진 해식동굴들을 볼 수 있어 매력적인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배에서 내려 등대섬으로 오르면 먼저 민둥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 푸른 잔디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 등대가 오롯이 하나 서 있다. 오래전 모 제과회사의 CF 배경으로 촬영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을 눈에 담은 장소헌팅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 큰 피아노를 섬으로 싣고 올 생각을 했는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수 거문도에서 만나는 등대

이번엔, 거문도 등대로 시선을 돌려보자. 여수에서 배를 달려 도착한 이 등대는 1905년 4월에 지어진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란 기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미 등대 자체가 잘 알려진 관광지가 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문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백도를 보기 위해 찾기 때문이다. 거문도는 바다의 풍랑이 잦아 오래전부터 거문도아가씨에게 장가든 사람은 아홉 번 절을 해야 섬을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거문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보기를 원하는 백도 유람선여행은 가능한 날보다 불가능한 날이 더 많다. 그런데 거문도에서 백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수월봉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등대의 관백정이다. 이름조차 백도를 바라보는 정자란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정자는 그래서 늘 사람으로 붐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등대가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를 따라 숙소동과 관리동으로 나뉘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과 함께 짙은 녹음 속에 잠긴 등대의 아름다움을 손바닥에 쥐듯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등대까지 가는 길 또한 싱그러운 매력을 더해주는데, 서도로 넘어가 등대로 가는 길은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만들어 놓은 자연적인 바위다리에서 시작된다. 바위덩어리들이 엉켜 만들어내는 다리를 건너면 그곳에 동백 숲 터널이 나오는 것. 동백이 한창일 때면 꽃송이 채로 떨어지는 동백이 붉은 융단을 깐 듯하고 하늘을 가린 꽃 터널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걸음조차 멈추게 만든다. 숨을 고르듯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가락가락 들이키면서 가는 등대로 향하는 걸음. 그곳에 기대하던 것이 없어도 이미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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