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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동절이 탄생한 역사

2013-05-04

지난 5월 1일은 메이데이 즉, 노동절이었습니다.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하루를 쉬며 봄을 만끽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토록 고마운 노동절을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미국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시.
미국 동부의 산업중심지인 이곳이 이날은 날이 밝아도 모든 것이 멈춘 채 적막했습니다.
수많은 공장들이 기계를 멈추었고, 상가는 문을 닫았습니다. 운전기사들도 출근하지 않아 버스도 전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외출복으로 차려 입고 아내와 자녀들의 손을 잡고서 집을 나서면서
도시는 갑자기 활기를 띠었고 이들은 무리 지어 중심가인 미시건 가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군중은 삽시간에 모여들어 8만 명을 육박했습니다.
이들이 행진하는 도로 주변 건물의 옥상에는 경찰과 주방위군, 비정규 민병대, 그리고 <핀커튼단>이라고 하는 악명 높은 구사대가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행진대열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미국노동총동맹이 결의한 8시간 노동제 쟁취 파업투쟁의 막이 오른 날이었습니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 34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19만명이 파업을 감행했습니다.
원래 노동운동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을 비롯한 유럽이 본고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미국에서 8시간 노동제 요구가 거세게 터져나온 것은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그만큼 열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유럽 국가보다 먼저 공황이라는 재앙을 경험합니다.
남북전쟁 말기인 1873년 필라델피아의 미국 최대은행인 제이 쿠크 은행이 파산했고 1877년에 이르면 미국의 실업자는 3백만 명에 이릅니다.
이는 미국 전노동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들마저도 1년에 절반 이상은 놀아야 했고, 임금은 공황 이전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삭감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리거나 일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모습을 존 스타인 벡은 <분노의 포도>라는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투쟁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한 탄광과 철도 부분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항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정부와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해서 타협과 협상 보다는 정면대결과 진압으로 맞섰습니다.
이를테면 1877년 전국철도노동자들의 총파업 때 정부는 시카고에 인디언을 때려잡던 악명 높은 필 셀리던 연대를 투입했습니다.
이 군대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굶주린 자들에게 총알이나 쳐먹여라”라며 총탄을 퍼부었습니다.
파업 노동자들이 공공연하게 처형당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은 이러한 야만적인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미국노동총동맹이라는 전국 조직을 만들어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맞섰습니다.
이들은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조건으로, 8시간 일하고, 8시간 휴식하고, 8시간 잠자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한 총파업의 날이 바로 1886년 5월 1일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날 파업과 시위에서 유혈충돌이 벌어진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일손을 멈출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자 결국 기업과 정부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국 노동운동은 세계노동자에게 8시간노동제라는 값진 선물을 남겼습니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은 미국 노동자들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매년 5월 1일을 <메이 데이>로 지정하고
기념시위를 벌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메이데이의 기원입니다.

역사 토막상식, 아하 그렇구나!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미국 노동자들이 쟁취한 8시간 노동제의 역사를 되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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