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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 수군 영웅, 정지

2013-08-17

광복 68주년에 즈음한 지난 8월 13일, 우리 해군이 최신예 잠수함 김좌진함 진수식을 가졌습니다.
이로서 우리 해군은 1800톤급 잠수함 네 척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손원일함, 정지함, 안중근함, 김좌진함 입니다.
손원일은 우리 해군을 창설한 제독의 이름이고, 안중근과 김좌진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독립운동가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잠수함의 이름에 붙은 정지라는 인물은 낯섭니다. 정지는 누구일까요.

정지는 고려 시대 무신입니다.
특히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운 해군 제독이었습니다.
고려 왕조 말기에 이르러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골머리를 알았습니다.
특히 1350년부터 40여 년 동안 남해안과 서해안뿐만 아니라 수도 개경을 위협당할 정도로 왜구의 준동은 극심했습니다.
왜구의 정체는 일본 해안가 마을에 살던 주민들로 이루어진 해적 집단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왜구의 정체에 대해서도 날조와 왜곡을 일삼고 있습니다.
왜구가 일본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고려인까지 포함된 다민족 해적집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왜구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입니다.
또 왜구가 준동한 원인이 고려의 정치가 문란해지면서 국방력이 약해진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수법입니다.
이는 태평양전쟁 당시 군위안부에 대해 본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원했다고 주장함으로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똑같은 수법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왜구가 준동하는 시기는 일본 국내에서 지방 호족세력 간의 전쟁이 격화되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왜구는 일본 국내 전쟁에 필요한 식량과 노동력을 약탈하기 위한 해외 원정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왜구의 준동이 날로 심해지자 고려 조정에서는 대책 수립에 골몰합니다.
특히 개혁군주 공민왕은 왜구에 대한 대책을 널리 공모합니다.
그 중 1374년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 제출한 대책이 공민왕의 눈에 띠었습니다.
그는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열 여덟 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나온 약관의 청년 정지였습니다.
정지는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서는 수군을 강화해 바다를 방어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왜구 격퇴론을 올린 자로 최무선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화포를 개발하여 고려군의 무기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정지는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를 전함에 장착하여 왜구를 해전에서 격파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공민왕에게 발탁된 정지는 전라도 지방에 발령을 받아 화포를 장착한 전함으로 왜구에 맞서 전투를 펼쳤습니다.
그는 순천, 영광, 광주 등지에서 연이어 침입한 왜구를 격파했습니다.
1383년에는 최대 규모의 왜구가 침입해옵니다.
무려 120척의 함선에 1만 6,800명의 왜구가 공격해왔습니다.
이는 거의 국가 대 국가의 전쟁에 맞먹는 규모였습니다.
당시 국왕 우왕은 왜구 병력의 규모에 겁을 먹고 멀리 내륙 깊숙한 철원 지방으로 수도를 천도할 계획까지 세울 정도였습니다.
목포에서 47척의 전함을 보유하고 대기하던 정지는 왜구가 침입해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수군을 이끌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지점인 관음포에서 해전을 벌여 왜구를 크게 격파하고 물리쳤습니다.
이후 왜구의 공세는 현저하게 약화되었습니다.
우리 해군의 최신예 잠수함에 정지라는 이름을 붙인 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지, 안중근, 김좌진 등 우리 최신예 잠수함은 모두 일본을 물리친 영웅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바다를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적 배경이 잠수함의 명칭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 셈입니다.

역사 토막상식, 아하 그렇구나!
잠수함 김좌진함의 진수를 맞아 고려시대에 왜구를 물리친 수군 영웅, 정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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