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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양대군의 리더십

2013-03-02

1452년 문종이 죽고 그의 아들 단종이 12살 어린 나이로 즉위한다. 신하들의 권력이 강화되고 왕권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문종의 동생이 수양대군이 나서 쿠데타를 도모한다. 훗날 세조로 조선의 7대 왕에 오르는 수양대군의 리더십을 왕권 쟁탈 과정을 통해 조명한다.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한다.

강하고 직설적인 성격
수양대군은 강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문인보다는 무인에 가깝다. 세종 말년에 병환으로 세자인 문종이 보좌하면서 신하들의 권력이 강화되고 왕권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던 인물이 바로 수양대군이다. 문종은 불과 2년 3개월 왕위에 있다가 죽었다.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게 된 문종은 신하들에게 단종을 잘 보위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이 때 가장 권력의 핵심에 있던 인물은 김종서와 황보인이다. 문종이 죽은 후 김종서를 중심으로 한 대신들의 권력이 막강해지고 어린 단종은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수양대군은 이런 왕권 약화와 신하들의 권력 강화에 큰 불만을 품고 정란을 도모한다.

명나라에 사신 자청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은 단종의 즉위를 명나라에 알리는 사신이 되겠다고 자청한다.
앞으로 도모할 쿠데타 음모를 위장하기 위한 수양대군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이 때 명나라에 같이 간 인물이 신숙주이다. 신숙주는 수양대군 편에 서서 끝까지 수양대군을 보필했다. 수양대군은 자신을 보필한 인물들을 모았는데 문인으로서는 한명회와 신숙주, 무인으로는 양정과 홍달손을 심복으로 삼았다.

김종서 처형
수양대군은 대신들의 중심인 김종서를 처형하면 신권이 붕괴되리라 보고 김종서 처형을 모의한다. 마침내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편지를 건넨다. 편지를 보려 고개를 숙이는 김종서의 목을 수양대군의 심복이 내리친다. 이후 한명회는 살생부를 작성해 반대파들을 처형하는데 앞장선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양대군은 권력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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