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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구 격퇴의 선봉, 이성계

2012-11-10

고려말 지방의 무신이었던 이성계가 고려를 대표하는 장수로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북쪽에서는 여진족, 또 남쪽에서는 왜구들의 침입이 극성을 부려 나라를 혼란스럽게 할 무렵, 이성계가 이들을 연달아 물리치면서 나라의 공을 세우자 이성계의 존재가 부각되고 후에 조선을 건국하는 인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다.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고려말 왜구 격퇴에 앞장선 이성계의 모습을 조명한다.

계속되는 왜구의 침략으로 혼란
고려 말 1350년 경 부터 북쪽에서는 여진족, 남방에서는 왜구들이 침입해 백성들을 약탈하고 노략질을 해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는데 특히 왜구들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고 왜구들의 침략은 40여년간 계속된다. 많은 침략을 지방의 무신이던 이성계가 선봉에 서서 연달아 격퇴하면서 전국적으로 이성계의 명성이 높아진다. 조정에서도 왜구 격퇴가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되고 왜구 격퇴를 위해 최무송이 화포를 개발하는 등 대책 마련을 하는데 이 때 가장 공을 세운 인물이 이성계와 최영이다.

황산대첩으로 왜구 대파
당시에 왜구의 수장은 아지발도라는 15세 정도의 어린 장수였다. 나이는 어렸으나 용맹성이 남달라 고려에 많은 피해를 준 인물이었다. 고려의 장수들도 아지발도를 두려워 했는데 마침내 이성계가 황산에서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맞아 대승을 거둔다. 원래 생포할 예정이었으나 적장을 사살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보고 이성계가 활로 아지발도를 명중시키고 이어 이성계의 참모인 이지란이 검으로 아지발도의 목을 벤다. 황산대첩으로 이성계는 일약 고려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많은 장수들이 이성계를 따르는 계기를 만든다.

여진족 출신 이지란
이성계의 옆에서 보좌 역할을 한 이지란은 여진족 출신 장수로 원래 이름은 퉁두란이었는데 고려군에 투항한 후 이성계가 발탁한 장수이다. 칼 솜씨가 뛰어난 장수로 이성계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 비록 타민족 장수였지만 과감하게 기용하여 이성계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한 인물로 키운 이성계의 용병술이 돋보인다. 이지란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개국공신으로 추대돼 이성계의 참모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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