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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조의 리더십 - 탕평책

2013-03-30

소론과 노론 간의 치열한 당쟁 속에서 즉위한 숙종 시대에는 정파 간의 당쟁이 극심했다.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이 보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죽고 이복동생인 영조가 왕위에 올랐다. 숙종 즉위 때부터 심각한 노론, 소론, 남인, 북인 간의 당쟁의 폐해를 몸소 겪어온 영조는 즉위 전부터 당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결심을 굳게 했다.
즉위 직후 가장 우선 과제로 ‘탕평책’을 추진한 영조의 리더십에 대해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영조, 탕평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
탕평책이란 왕정을 이끌어 가는데 있어 인재 등용을 정파나 사리사욕을 배제하고 국가 민생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말하다.
당파와 사리사욕에 의한 집단주의의 폐해는 현대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탕평책의 근원은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서경’에 있다.
서경에서는 어느 편이 치우치지 말고, 당이나 무리에도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인재 등용과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즉위 후 영조는 탕평을 나라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강력하게 추진했다.

박세체로부터 영향
영조의 탕평책은 숙종 때 학자인 박세체란 인물의 이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옳고 그른 ‘시비론’을 떠나 ‘우열론’에 근거해 능력 있는 인물들을 정파에 상관없이 고루 등용하는 것이 탕평책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영조는 박세체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박세체의 문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숙종 때도 박세체는 탕평의 중요성을 건의했지만 숙종은 당파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해 ‘시비론’을 강조하며 옳고 그름을 따져 등용해야 한다고 박세체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서 선언하며 강력히 추진
영조는 탕평책에 관한 교서를 선언했다. 이 교서에서 영조는 탕평책의 폐해를 설명하고 강력히 추진할 뜻을 밝혔다. 만일 반대하는 신하나 학자가 있으면 철저히 문책해 귀양을 보내겠다고 했다.
탕평책을 추진하면서 영조는 노론과 소론, 남인, 북인 중의 강경파를 배제하고 온건파 중심의 인물들을 대거 등용했다.
영조는 탕평 정치를 실현해야 신하들 간에 화합이 이뤄지고 또 조정이 안정된다고 했다.
조정이 안정돼야 궁극적으로 백성들의 삶이 편안해진다는 정치 철학을 가지고 ‘탕평책’을 추진해 당쟁을 종식시킨 업적이 영조가 이룬 가장 큰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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