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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조의 리더십 - 학술, 문화

2013-04-13

조선 후기 다양한 분야에서 찬란한 업적을 남겨 중흥기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영조의 리더십을 살펴본다. 정치, 경제에 이어 마지막 시간으로 학술, 문화 분야의 업적을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전통 의례(儀禮) 회복
영조는 그 동안 왕조에서 전해 내려오다가 중단된 의례를 회복하는데 힘쓴다. 왕과 신하들이 모여 활쏘기를 하는 ‘대사례’ 왕이 친히 백성들과 함께 농사에 참여하는 ‘친경례’ 왕비가 백성들과 함께 누에를 치는 ‘친잠례’ 등 좋은 전통 의례들을 회복해 왕과 신하 사이에 친목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데 힘썼다.
이런 의례들은 조선 전기까지 시행되다가 중기에 병란, 호란 등을 겪으며 일시 중단됐었는데 영조 때 본격적으로 회복된다.
영조는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이런 의례들의 상세한 사항들을 기록으로 남도록 한다. 이런 기록들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보존돼 있다.

다양한 서적 편찬
영조 시대에 편찬사업도 활발히 추진됐다.
조선 전기에 활발했던 편찬 사업을 이어간다는 의미로 영조 때 출판된 서적들 중에는 ‘속(續)’자 가 붙은 것이 많다. 속 동국대전, 속 병장도설, 등이다.
전대의 잘된 사례들을 계승하고 보완해 보다 높은 수준의 서적들을 출판하겠다는 영조의 의지가 강했다. 통치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는 각종 지리지와 지도도 영조 시대 때 많이 나왔다. 지리지는 전국의 토지,인구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중요 자료였고 지도는 국토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다.
정상기, 정창연 부자가 만든 실축 지도는 매우 정밀해 후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직접 저술한 책도 많아
영조는 79건의 ‘어제서’ 즉 책의 서문을 썼다. 또 저술한 48 종의 책은 경연에서 교과서로 활용됐다. 경연에서 가르쳤다는 것은 자신의 저술을 유교 경전 등과 비슷한 위치에 둘 정도로 자신의 말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하는 등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직접 저술한 책은 주로 수긴, 치국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내용이 많고 금욕을 강조하고 있다. 또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직접 쓴 서문들은 한글판에 해당하는 언해본을 출판해 일반 백성들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다.

미술 분야도 발전
영조는 미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 시대 화가 중에 영조가 가장 친애한 인물은 정선이다. 정선은 몰락한 양반 집안 출신인데 지방의 관리로 임명하는 등 영조의 특별한 대우와 지원을 받았다.
정선의 그림 중에는 서울의 한강 주변을 그린 그림이 많은데 영조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영조는 정치적으로는 탕평책을 통한 당쟁 종식과 고른 인재 등용이라는 업적을 남겼고 경제, 사회적으로는 균역법 등을 시행하고 신문고 제도를 부활해 백성들의 생활을 도왔고 학술 문화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한 왕으로서 업적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높이 평가되는 부분은 항상 백성의 삶을 가장 중요한 근본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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