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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에 나타난 고려시대

2013-05-18

조선 시대에 이어 오늘부터 고려시대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본다.
첫 번째 시간으로 조선 시대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고려사의 배경 등 전체적인 얘기를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나눈다.

수도의 위치도 영향
일반 국민들은 조선 시대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지식은 비교적 많은 반면에 고려시대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들이 많다.
그 이유를 수도의 위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수도는 지금의 서울로 이곳저곳에 유물들이 남아있고 유물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조선시대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러나 고려의 수도는 개성으로 북한 지역에 있기 때문에 개성에 남아있는 고려 시대 유물들을 접할 기회가 없다.
이런 점도 우리가 고려 시대에 대한 역사적 지식과 관심이 덜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쓴 ‘고려사’
현재 남아있는 고려의 역사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지 60여년이 지난 시점에 정인지, 김종서 등이 서술한 것이기 때문에 고려를 무너뜨린 혁명 세력을 정당화하는 관점에서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고려의 업적은 제대로 평가가 안 되고 조선이 들어서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서술됐다.
이런 배경 때문에 ‘고려사’에는 주로 전기 고려의 업적은 인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무신란 이후의 고려 후기에는 정치가 무너지고 민심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는 식으로 비하하고 있다.
이런 고려의 상황 때문에 개혁 세력에 의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이 건국됐다는 논리를 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세기 일제 식민사학도 영향
1910년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면서 일본은 한국의 고대사를 철저히 왜곡했다. 이 과정에서 고려의 많은 업적들이 묻히게 됐다. 일본은 또한 조선의 역사도 왜곡했다.
해방 후 국내 사학자들은 주로 왜곡된 조선 역사를 연구하고 바로 잡는데 주력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려사 연구에는 소홀한 면이 있다.
이런 점들이 찬란한 고려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관심도 조선에 비해 적게 된 원인이다.

개별 왕조의 집권 기간이 긴 ‘한국사’
신라는 1000여 년 동안 지속됐고 고려가 500 여년, 조선도 500 여년이라는 비교적 장기간 집권했다. 고려가 장기간 지속된 왕조로서 찬란한 문화적 업적을 이룬 힘은 다원적 사회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한 다원 시대였다. 팔만대장경,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고려청자 등 우수한 문화유산을 남긴 고려 왕조의 다원화 정책을 중심으로 고려에 대한 집중 탐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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