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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시대의 다원성

2013-05-25

500년이 넘게 지속된 고려 왕조의 가장 큰 특징은 다원성이다.
어떤 의미의 다원성이며 고려의 다원성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국민대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다양한 가치 공존
신라의 사상은 불교가 기반이었고 조선의 경우 성리학의 가치를 가장 중요시했다.
그런 반면 고려의 경우 불교, 성리학 등 단일 가치만을 추구하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했다.
사상적으로 불교가 융성했지만 유학과 도교, 풍수지리, 민간 신앙까지 다양하게 공존한 사회였다.
일원 사회의 경우 가치가 다른 것은 배척하는 경향이 있어 대립과 갈등을 겪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원사회는 다양함이 공존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특징이 있다.

포용과 개방의 사회
고려 사회를 정의한다면 포용과 개방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똘레랑스와도 흡사하다. 다른 사상과 이념을 서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포용성으로 인해 정치 , 사회가 개방성이 두드러지고 역동성도 넘쳤다.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가야할 존재로 인식하면서 다양함 속에 조화를 이룬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개방성으로 활발한 무역
고려를 세운 왕건의 일가들은 원래 바다 상인 출신들이었다.
해외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 고려가 국력이 강성해진 배경도 이런 개방성으로 많은 나라들과 교역을 활발히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개항에 대한 논란이 많았고 쇄국정책을 펴 국운이 쇠하게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재도 한국은 농업보다는 대부분 무역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고려시대에도 개방정책으로 활발하게 외국과 교류를 추진하고 무역을 넓혀 12세기에는 문화가 발전하고 국력이 강성하게 됐다.

벌집 구조의 사회
고려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회가 아래층까지 세분화돼 벌집처럼 촘촘히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 군과 현 단위가 조선의 경우 330개 정도인데 고려는 무려 520개 였다. 그만큼 세분화가 돼 있었다는 의미다. 또 조직적으로 행정체계가 연결돼 있어 사회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됐다.

훈요 십조에도 다양성 기록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 십조’에도 고려의 다양성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불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불교의 폐해에 관한 우려도 기록돼 있다.
풍수지리와 도교를 강조하고 관리들에게는 역사와 유교 경전을 읽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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