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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태조 이성계의 경제적 리더십

2012-11-17

위화도 회군 후 정치적, 군사적인 사실상 실권을 잡은 이성계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 것이 시급했는데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데는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경제적인 제도 개선으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을 돕는 정책을 폈는데 이성계의 경제적 리더십에 대해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살펴본다.

정치적 중심에 선 이성계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적 실권을 잡은 이성계는 1391년에 3군도총재사가 되어 군사적, 정치적 실권자로 부상한다. 조선 건국을 앞두고 이성계로서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 것이 시급하였다. 고려말에는 권문세력들이 모든 부와 권력을 쥐고 백성들을 착취해 백성들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불만은 고조되고 있었다. 백성들의 민심을 자신에게 돌리려면 경제 개혁을 단행해 권문세가들에게 편중된 부를 회수해 새로운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경제 정책이 필요함을 절감한 이성계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한다.

경제 개혁으로 민심이 이성계에게
이성계는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과정법을 실시하는데 권문세가가 가진 토지를 회수해 새로운 관리들에게 나누어주고 지나치게 많았던 농민들 토지에 대한 세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 법으로 백성들은 세금의 부담이 줄어들고 빈민으로 전락했던 백성들도 희망을 갖고 다시 농사를 지어 생산량도 증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게 된 백성들의 민심도 태조 이성계 대한 믿음과 지지를 보내게 되었다.

불교 세력도 억제
고려 말에는 국교를 불교로 정할만큼 불교 세력이 커졌고 승려와 불교 사원의 영향력도 컸다. 이와 더불어 불교의 폐해도 컸는데 사원들의 토지 소유도 확장돼 부와 권력의 중심 세력이 되었고 백성들에 대한 횡포도 심했다. 이에 대해 이성계는 불교 세력의 권력과 부의 집중을 바로잡고 억제하는데 주력했다. 개혁의 중심이었던 정도전의 ‘불씨잡변’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적혀있다. 또 조선경국대전에도 권문세가과 불교 세력에 대한 부의 회수 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권문세가의 토지 대장을 다 불 태웠다고 하는데 그 수가 엄청났다고 한다.

조선 건국의 청사진 제시
조선을 건국한 후 이성계는 조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잘못된 부의 편중을 바로잡는 경제개혁,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데 초점을 두고 외교 정책으로는 원나라 간섭에서 벗어나 명나라와 새로운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등 다변화와 국호를 조선으로 바꿔 단군, 기자 조선의 후손임을 알리고 또 새로운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겨 개성에 편중됐던 나라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등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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