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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새 나라의 국호, 조선으로 정하다

2012-12-01

특유의 카리스마와 과감한 성격으로 조선 건국 때 아버지 태조를 도운 태종은 자신이 원하는 왕권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 즉 정몽주나 정도전을 과감히 처단하는 악역을 자처하며 왕권에 오른다. 왕권 강화, 중앙집권제를 추구했던 태종의 리더십에 대해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얘기를 나눈다.

왕 즉위 후에도 과감한 성격 지속
태종의 과감한 결단력 그리고 냉혹한 성격은 즉위 후에도 계속된다. 왕후 민씨의 동생들 즉 처남들은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많은 공을 세웠지만 그들이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후에 유배시킨 후 처형하는 잔혹함을 보인다. 비록 공이 많은 신하일지라도 자신의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면 친족을 막론하고 과감하게 처형하는 태종의 모습은 즉위 후에도 한결같았다.

세종 시절에도 권력 행사
왕위를 아들 세종에게 물려주고 상왕 자리에 오른 태종은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왕권을 움직이려 하고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은 무참히 처형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의 장인인 심원이란 인물인데 사위인 세종의 권력을 믿고 자신의 권력을 키우려는 조짐이 보이자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돌아온 직후 처형하였고 세종의 장모는 관노비로 전락시키는 등 권력형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과감히 처형하였다.

냉혹함과 냉철함
태종의 냉혹함 뒤에는 냉철함이 있다. 정도전을 처형할 때도 재상중심주의를 주장하는 정도전이 왕권 강화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하고 악역을 자처했던 것이다. 태종의 잔혹함 뒤에는 항상 조선의 바람직한 방향을 위해 왕권이 강화돼야 한다는 일관된 철학이 있었고 냉철하게 자신이 바라는 바를 위해 냉혹한 모습도 불사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태종은 6조판서직계제, 즉 6조 판서들이 나라의 일을 직접 태종에게 사전에 보고하고 허락을 받은 후에 추진하는 정책을 행하였는데 이는 관료들의 권한을 줄이고 본인이 직접 모든 국사를 챙기겠다는 태종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백성들의 고충 직접 살펴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살피고 문제점을 즉시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태종은 신문고를 설치하였다. 실제로 신문고를 통해 고충을 알린 백성들은 거의 없었지만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는 태종의 마음을 나타낸 상징성이 있다. 태조 때의 제도는 관료들에게 일을 분담하고 책임지게 한 내각제와 비슷하다면 태종의 정책은 오늘 날 대통령중심제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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